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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데스마스크 / 허만하

by 혜강(惠江) 2020. 11. 7.

 

 

데스마스크

 

 

- 허만하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려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

 

얼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 수록

 

 

◎시어 풀이

*데스마스크(Death Mask) : 사람이 죽은 직후에 그 얼굴을 본떠서 만든 안면상(顔面像).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바다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 눈을 죽음으로 인식하고, 바다를 데스마스크로 환치하면서 인간 존재의 죽음을 성찰하고 있다. 전체 6연 13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각 연이 짧은 2행(5연만 3행)의 절제된 구성이다. ‘바다’에 내리는 ‘눈’을 죽음으로 인식하고 ‘눈’의 이미지와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화자는 바닷가에 서서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그 눈의 소멸을 보며 인간의 죽음을 떠올려본다. 1연에서는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눈’은 소멸(消滅)하는 존재로 바다 위에서 ‘부드럽게 죽는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바다에 내리는 ‘눈’을 죽음으로 인식한다.

 

  2연에서는 ‘죽음을 덮으며/ 눈은 내리지만’에서는 계속 내리는 눈을 ‘죽음을 덮으려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3연에서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라고 서술함으로써 의미론적으로 고리 형태의 순환을 의미하는 원환적(圓環的)인 구성을 보인다.

 

  4연에서는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눈이 소멸하는 바다의 둥근 모양을 ‘눈시울의 바다’, 즉 데스마스크(인간의 얼굴)를 연상하여 환치한 것이다. ‘데스마스크’는 사람이 죽은 직후에 그 얼굴을 본떠서 만든 안면상(顔面像)을 말하는데 의료계에 몸담았던 시인에게는 매우 친숙한 용어였을 것이다.

 

  그래서 5연의 ‘얼굴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으로 표현하여, 사라져 버리기에 눈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의 내면에는 눈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소멸하는 눈의 무게는 서서히 죽음의 무게로 바뀐다.

 

  화자는 마지막 6연, ‘그의 내면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라고 묘사한다. 여기서 ‘그’는 ‘눈’과 마찬가지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마치 ‘바다’에 떨어져 죽는 ‘눈’처럼 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내면에 내리는 눈은 보이지 않게 찾아오는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바다’는 표면적으로는 눈이 소멸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겠지만, 본질에서 보면 계속하여 삶과 죽음이 연계되고 반복되는 세계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의 주제는 겨울 바닷가에서 느끼게 된 존재와 죽음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관념적이고 담담한 어조의 이 시는 존재론적인 의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허만하 시인은 순수한 언어와 존재의 탐구에 천착하며 수직 지향의 시적 경향을 보여 왔는데, 이 시 역시 그러한 시인의 시 세계 일반의 특성과 조응한다.

 

 

▲작자 허만하(許萬夏, 1932~ )

 

  시인. 대구 출생. 1957년 《문학예술》에 <과실>, <날개>, <꽃> 등 3편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참신한 인식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중첩시켜 세계와 인생에 대한 선의, 애정 등을 노래하려는 청렬(淸洌)한 시 정신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 《해조(海藻)》(1969),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2003), 《허만하 시선집》(2005), 《야생의 꽃》(2006), 《바다의 성분》(2009)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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