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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by 혜강(惠江) 2020. 11. 16.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 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리었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좋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 날 밤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짧은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어라”

   아 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 잡지 《백조(白潮)》(1923. 9) 수록

 

 

◎시어 풀이

 

*시왕전(十王殿) : 불교에서 저승에 있다는 10명의 왕을 모셔놓은 법당.

*상두꾼 : 상여 메는 사람.

*옹달우물 : 작고 오목한 우물.

*감중연 : 팔괘 중의 하나인 감괘, 여기서는 '태연히'의 뜻.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백조 동인’의 한 사람인 홍사용의 대표작으로, 1923년 9월호 《백조(白潮)》에 발표되었다. 이 시는 한 인물의 삶과 고통, 비애를 다루고 있는 시로, 제시된 한 인물은 조국을 상실하고 고통을 겪는 우리 민족 전체를 대변하는 인물로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겪는 우리 민족의 수난과 설움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의 화자가 자신을 ‘눈물의 왕’으로 칭함으로써 조국의 비극적 운명으로 인한 서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눈물의 왕’인 화자(話者)가 비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내면으로 향한 죽음이나 허무의식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그 시대 우리 민족이 처하였던 암담한 현실과 실국(失國)의 한이 깔려 있다. 이러한 민족적 정한(民族的情恨)과 허무의식을 기조로 한 비애와 서정은 이 시의 특색일 뿐만 아니라 당시 백조파 동인들의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경향을 대표하기도 한다.

 

  전체가 9연으로 되어 있으며 산문시이다. 현재의 안목으로 보면, 시의 형식이나 표현 등이 다소 조잡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23년 당시의 시단에서는 자유시 그리고 산문시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상징적 시어의 사용과 같은 문장 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절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나’가 성장해 가는 서사적 구조에 따라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각 연의 구조에 따라 시제를 살피면, 1연은 현재, 2~8연은 과거, 9연은 현재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용을 일별하면 1연은 시왕전에서 쫓겨난 눈물의 왕을 그려내고, 2연에서는 상처받은 눈물의 왕을, 3연에서는 탄생 직후 탄생의 슬픔을, 4연에서는 성장기에 탄생의 슬픔을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우는 왕을, 5연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한 슬픔을, 6연에서는 서글픈 현실에서 갖는 작은 희망과 좌절감을, 7연에서는 성년이 된 후 슬픔을 내면화하는 모습을, 8연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슬퍼하는 왕을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9연에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눈물의 왕인 ‘나’의 설움이 심화되고 있다.

 

  이 시는 화자의 자전적 서술로 운행되고 있는데, 1연에서 화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구가 계속 반복하여 ‘나는 왕’임을 강조하고 있다. ‘왕’은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이며,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다. ‘가장 가난한’ 이유는 땅을 빼앗긴 식민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겨난 ‘눈물의 왕’이다. 여기서 ‘눈물의 왕’은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정서를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 시어이다. 화자는 자신을 저승에서조차 쫓겨난 비참한 존재로 표현함으로써 모든 것을 빼앗긴 암담한 식민지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연은 출생 이후 어머니와 ‘눈물의 왕’인 아들과의 대화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화자는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이란 말을 덧붙이면서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라고 한다. 즉 어머니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지만 가장 뚜렷한 것은 사랑과 눈물이란 의미이다. 그런 화자가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한 말은 ‘젖 주세요’였단다. 그러나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라고 한다. 이것은 삶의 시초가 고통이며 슬픔임을 드러내어, ’눈물의 왕‘의 탄생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3연에서는 늘 ’눈물의 왕‘ 아들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역시 탄생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자라면서 화자는 어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어머니가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다는 이야기, 동네 사람 모두가 ’아들이냐 딸이냐‘고 물을 때,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이 아픈 눈물만 흘렸다는 이야기, 나 역시 우는 어머니를 따라 ‘으아!’하고 울었다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는 2연의 ‘눈물의 왕’과 연결되는 것으로 태어난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비극적인 존재였음을 드러내어 탄생의 슬픔을 부각하고 있다.

 

  4연에서는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울었음을 회상한다. 그날은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이었다. 화자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기서 ‘구슬픈 이야기’는 확실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가난 이야기이거나 일제에게 나라를 잃고 겪게 된 슬픈 이야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숨을 길게 쉬시다가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는 모습은 슬픈 이야기에 젖어 허탈한 웃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며, 얼굴을 얼른 숙이는 행동은 아들에게 자신의 슬퍼하는 모습을 감추려는 것이다. 왕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뜻도 모르면서’ 늘 버릇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었던 것이다.

 

   5연은 화자가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비로소 자신이 우는 ‘눈물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열한 살 아이는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간다. 이때 화자의 동무들이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 화자를 놀리자 화자는 겁을 먹고 소리쳐 울었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는 죽을 운명을 지닌 존재 즉 식민지의 아들로 태어난 숙명적 삶으로, 비로소 울음의 근원을 느끼게 된다.

 

  6연에서 화자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듣는다. 이어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다.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파랑새를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다. 여기서 ‘파랑새’는 이상 도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인데,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와 마찬가지로 처량히 운다. 그래도 화자는 그 파랑새를 쫓아가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모처럼 가진 작은 희망마저 무너지고 결국 좌절감을 느낄 뿐이다.

 

  7연에서는 성년이 된 화자가 자신의 슬픔을 내면화한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는 화자에게 하얀 옷을 입혀주고 귀밑머리를 땋아 주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라고 한다. ‘하얀 옷’을 입힌 것은 성년이 되어 죽음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 진 것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화자는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한다. 성년이 된 후에는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조차 없는 비극적인 현실임을 깨달아 슬픔이 속으로 내면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8연에 오면, 화자는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린다. 여기서 ‘허물어진 봉화’는 나라를 빼앗겨 쓸모없이 된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며, ‘쫓긴 이의 노래’는 나라를 잃고 쫓겨 다니는 처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는 의미를 잃고 어슬렁거릴 때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음을 확인한다. 감중련은 팔괘 중의 하나인 감괘로 ‘물이 쉬지 않고 흐르니 수고한다’는 괘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쉽게 '태연히'의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돌부처도 구원하지 못하는 슬픈 운명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가’라며 구원받을 수 없는 슬픔을 ‘뜬구름’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9연에서는 1연이 변주되면서 ‘나는 왕이로소이다’라고. 그리고는 이어 또 강조한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라고.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이라면서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라고 강조한다. 결국,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화자는 왕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왕이 아니라 스스로를 왕이라 칭할 뿐이다. 게다가 눈물의 왕이요 ‘설움이 있는 땅’을 다스리는 왕임을 한탄하는 것이다.

 

​  결국, 이 시는 ‘눈물의 왕’인 화자(話者)의 울음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울음 또한 상두꾼과 파랑새가 의미하듯이 당대 우리 민족이 처한 식민지 현실, 나라 잃은 설움이 깔려 있다. 실제 홍사용은 3·1운동 당시 학생운동의 선두에 섰다가 체포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고향으로 내려가 ‘봉화(烽火)뚝’을 거닐며 ‘쫓긴 이의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니 어쩌면 이 시는 홍사용의 자전적 요소가 깊게 스며든 한의 노래가 된다.

 

 

▲작자 홍사용(洪思容, 1900~1947)

 

  시인.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 경기도 용인 출생.  <백조> 동인으로 활동한 초기에는 감상에 치우친 시를 썼으나 차츰 토속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민요시를 썼다.  그는 《백조》 창간호에 〈꿈이면은?〉,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봄은 가더이다〉 등을 발표했는데, 이 시들은 어린 시절의 회고와 실연을 내용으로 한다. 이와 같은 성격은 1923년 《백조》 9월호에 발표한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와서 달라지는데, 이 시는 매우 섬세한 구조로 되어 있는 산문시이다. 그가 한국시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이러한 시를 썼다는 것 외에도 민요이론을 정리하고 민요시를 창작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봄은 가더이다〉, 〈시악시 마음은〉 등이 민요시에 속한다. 시집으로 《나는 왕이로소이다》(1976)가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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