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 황동규
우포에 와서 빈 시간 하나를 만난다.
온 나라의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잇달아 금을 긋는 송전탑 송전선들이 사라진 곳,
이동 전화도 이동하지 않는 곳,
줄풀 마름생이가래 가시연(蓮)이
여기저기 모여 있거나 비어 있는
그냥 70만 평,
누군가 막 꾸다 만 꿈 같다.
잠자리 한 떼 오래 움직이지 않고 떠 있고
해오라기 몇 마리 정신없이 외발로 서 있다.
이런 곳이 있다니!
시간이 어디 있나,
돌을 던져도 시침(時針)이 보이지 않는 곳.
-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시어 풀이
*줄풀 :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못이나 물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마름 : 마름과의 한해살이풀. 연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생이가래 : 생이가랫과의 한해살이풀. 물 위에 떠서 자라는 풀로 가늘고 길며 잔털이 배게 난다.
*가시연 :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줄기와 잎에 가시가 있다.
*해오라기 : 왜가릿과의 새.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 우포늪을 보며 우포늪의 원시적 생명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이다.
우포늪은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이다. 이곳의 늪은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까지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우포늪이 가장 커서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다. 70여만 평에 이르는 천연 늪에는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며 동식물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국내의 많은 늪이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포늪은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생태계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에는 람사르 협약에서 보존 습지로 지정되어, 이제 우포는 국제적으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습지가 되었다.
시의 화자는 ‘우포늪’에서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자로 우포늪의 다양한 생물을 통해 우포늪이 가진 원시적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다. 상징적 시어를 사용하여 화자가 관찰한 우포늪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우포늪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열거하여 대상의 특징을 강조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상을 감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대조적 이미지를 지닌 시어들로 대상의 속성을 부각하고, 시상이 전개됨에 따라 화자의 정서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제13행의 단연시로서, 의미상 두 단락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1~7행)에서는 문명에서 벗어난 공간으로서의 우포늪을 묘사하고, 후반부(8~13행)에서는 원시적 생명력이 충만한 우포늪을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문명의 시간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과 같은 우포늪을 이상적 공간처럼 여기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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