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 폭포(朴淵瀑布)
- 이병기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山人)*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이 골 저 골 물을 건너고 또 건너니
발밑에 우는 폭포 백이요 천이러니
박연(朴淵)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봉머리* 이는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메이고* 이지러지고,
다만 그 흐르는 물이 긏지* 아니하도다
- 《가람 시조집》(1939) 수록
◎시어 풀이
*박연 폭포(朴淵瀑布) :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폭포로 금강산의 구룡 폭포, 설악산의 대승 폭포와 함께 경관이 뛰어나 우리나라의 삼폭(三瀑)이라 일컬어지는 절경.
*산인(山人) :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서 은거하는 사람.
*봉머리 : 산의 봉우리.
*메이고 : 메워지고. 뚫려 있거나 비어 있던 곳이 묻히거나 막히고.
*긏지 : ‘그치지’의 줄인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0~40년대 현대 시조를 확립하여 시조의 현대화에 이바지한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선생의 작품으로, 박연 폭포의 장엄함과 영원한 불변성을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한 연시조이다.
4음보의 외형률에 따라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 이동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의인법, 과장법, 대조법 등을 활용하여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1연에서는 박연 폭포로 가는 길에 자연과 하나가 됨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박연 폭포를 보기 위해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는 길은 비도 맞아야 하는 괴로운 길이지만, 전혀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산행의 즐거움을 말하면서, 자신을 산에 사는 은자(隱者)인 산인(山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산과의 합일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시적 화자의 모습, 즉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드러낸 것이다.
2연에서는 산으로 들어가서 박연 폭포의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을 의인법, 과장법과 청각적 심상을 통해 생동감 있게 보여 주고 있다. ‘발밑에 우는 폭포’는 의인법을 이용한 청각적 이미지이며, ‘백이요 천이러니’는 과장법을 활용하여 폭포의 웅장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이태백의 한시 <망여산 폭포(望廬山瀑布)>를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이시를 번역하면 “물줄기 내리쏟아 길이가 삼천 자요/구천의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가 될 것이다. 원근의 이동에 따른 표현 역시 돋보인다. ‘박연에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라는 표현은 박연 폭포의 웅장함을 강조한 것으로 시인은 폭포의 웅장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3연에서는 그치지 않고 흐르는 박연 폭포의 영원성을 대조법을 활용하여 노래하고 있다. ‘봉머리 이던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메이고 이지러지고’에서의 산봉이에서 일던 ‘구름’과 바위에 새긴 ‘글발’은 시간이 흐르면 없어지는 유한하고 가변적(可變的)인 것으로서 시간이 흘러도 그치지 않는 폭포와 대비시켜, 폭포의 무한하고 변하지 않는 영원성을 예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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