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by 혜강(惠江) 2020. 8. 4.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리고 쉬는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 나무들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 시집 《제국 호텔》(2004) 수록

 

 

◎시어 풀이

 

*휘황하게 : 광채가 나서 눈부시게 번쩍이게.
*해군 장군 :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의미함.
*엽록소(葉綠素) : 식물의 세포인 엽록체에 함유된 녹색 색소. 광선을 흡수하여 탄소 동화 작용을 행함. 잎파랑이. 클로로필(chlorophyll).

*광합성 : 녹색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 탄소와 수분으로 유기물을 합성하는 과정.
*교란 :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우리가 평범하게 보아오던 일상의 현상들을 살펴보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부자연스러운 모습과 그 속에 존재하는 우리 현실의 부정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겨울 밤 광화문 네거리에 휴식을 취해야 하는 데도 전등을 매달고 불을 밝힌 나무들과 밤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맞이할 봄에 대한 불안감을 노래하면서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문명에 대한 불안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겨울밤 자연의 생명력이 현대문명으로 인해 파괴되는 비정상적인 장면을 바라보면서 그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상황의 지속이 앞으로 다가올 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염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는 역설적 표현과 상황을 제시하여 시상을 전개한다. 해군 장군의 동상이 내륙 한가운데 서 있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겨울나무들이 이상한 광합성을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해 광화문 네거리는 해가 졌는데도 어두어지지 않는다. 이 시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모순된 표현이지만 잘 음미해보면 그 속에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자연 대상물에서 인간의 문제로 확대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1연은 겨울 저물녘, 가로수에 불이 밝혀지는 광화문 네거리의 찬란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가로수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불을 밝혀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라며, 화자는 그 불꽃 나무를 보고 ‘손뼉을 칠 뻔했다’라고 한다.

 

  2연은 순리를 거스르는 도시의 밤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붉 밝힌 네거리에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놓은 권력들’과 해군 장군의 동상이 내륙 한가운데 서 있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해군 장군의 동상은 내륙 한가운데가 아닌 바다 앞이 더 잘 어울리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 역시 불을 끄고 있을 때 진정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 네거리는 말 그대로 광화문(光化門)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는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인가‘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어둠(밤)'과 '겨울'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시에서 '어둠(밤)'과 '겨울'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나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정적 현실을 상징하는 시어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어둠(밤)'과 '겨울'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자연적인 상황에서 어둠은 모든 생명체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한 '안식'과 '휴식'을 누리는 시간이다. '겨울'도 나무들이 새로운 봄을 준비하기 위해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둠(밤)'과 '겨울'을 거부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 도시 권력은 화자에게 있어 부정적인 대상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는 권력을 보면서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가올 봄이 비정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3연 역시,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황의 지속되는 것에 염려와 불안감을 드러낸다. 화자는 겨울이 되었는데도 나무들은 켜놓은 전구들 때문에 잎 없이도 광합성을 하고,겨울나무들은 새로운 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빼앗긴 채 교란당하는 등, 순리를 벗어난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현실을 보면서 염려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여기서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나무들’은 정상적이 아닌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라고 한다. 이 ‘심상치 않다’라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상황에서 과연 사람들과 나무들이 봄을 맞이하여 약동하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과 불안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 시는 현대문명으로 인해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현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인간 중심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작자 이문재(李文宰, 1959~ )

 

시인. 경기 김포 출생. 1982년 《시운동》에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튼튼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시 세계를 보여 준다. 시적 상상력으로 현실 세계를 부유하는 젊은 혼의 이미지를 노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 줄 때》(1988), 《산책 시편》(1993), 《마음의 오지》(1999), 《제국호텔》(2004), 《공간 가득 찬란하게》(200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곰팡이 – 산책시 1 / 이문재  (0) 2020.08.05
기념 식수 / 이문재  (0) 2020.08.05
산성눈 내리네 / 이문재  (0) 2020.08.04
소나기 / 이면우  (0) 2020.08.03
개밥풀 / 이동순  (0) 2020.08.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