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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소나기 / 이면우

by 혜강(惠江) 2020. 8. 3.

 

 

 

 

소나기

 


- 이면우

 


숲의 나무들 서서 목욕한다 일제히
어푸어푸* 숨 내뿜으며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
누렁개와 레그혼*, 둥근 지붕 아래 눈만 말똥말똥
아이가, 벌거벗은 아이가
추녀 끝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붉은 마당을 씽 한 바퀴 돌고 깔깔깔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와 몸을 턴다
점심 먹고 남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와
나는 고추밭에서 쫓겨나 어둔 방안에서 쉰다
싸아하니* 흙냄새 들이쉬며 가만히 쉰다
좋다.

 

- 시집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2002) 수록

 

 

◎시어 풀이

 

 

*어푸어푸 : ① 얼굴이나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내는 소리. ② 물에 빠져서 괴롭게 물을 켜며 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레그혼(leghorn) : 닭의 한 품종. 대표적인 난용종(卵用種)임. 볏은 붉고 몸빛은 갈색·백색·흑색 등인데, 백색종이 특히 우수함.

*먹장구름 : 먹빛같이 시꺼먼 구름

*싸아하니 :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화자의 정서를 담담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 낸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소나기 내리는 낮의 정취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여 평온함과 상쾌함, 그리고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 시의 시적 상황은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오후이며, 화자는 ‘어둔 방 안’에서 쉬면서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좋아하고 있다. 비를 맞는 나무들의 모습을 의인법으로 표현하여 비가 내리는 모습을 경쾌한 어조로 생동감 있게 나타내는 한편 화자가 바라보는 풍경을 비유와 음성상징어를 활용하여 시적 이미지와 정서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향토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토속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좋다’라는 말로 화자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선의 이동을 활용하여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드러내고 있는데, 화자는 소나기를 맞은 ‘숲의 나무들’, ‘누렁개와 레그혼’, ‘눈 말똥말똥한 아이’, 그리고 화자인 ‘나’로 시선을 이동하며 화자가 바라보는 풍경과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1~2행에서는 비를 맞고 있는 숲의 나무들이 목욕하고, 숨 내뿜으며 호구 쪽으로 걸어간다며 의인법과 음성상징어 ‘어푸어푸’를 활용하여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3~7행에서는 누렁개와 레그혼이 비를 맞고 있고, 눈만 말똥말똥한 벌거벗은 아이가 추녀 끝에서 나와 붉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깔깔깔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와 몸을 터는, 비 오는 마당의 경쾌한 풍경을 그려낸다. 개와 닭, 아이 모두가 소나기 내리는 풍경 속 주인공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8~11행에는 화자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고추밭을 둘러보던 화자는 남쪽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오자 어둔 방으로 들어와 잠시 쉰다. 그런데 ‘싸아하니 흙냄새 들이쉬며 쉬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마지막 한 행으로 독립된 ’좋다‘라는 시구를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비 오는 풍경을 보며 느끼는 화자의 평온함과 여유로운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작자 이면우(1951 ~ )

 

 

  노동자이자 시인. 대전 출생. 중학 졸업이 최종학력. 공장과 공사장에서 보일러 설치공으로 생업을 삼았으며, 1988년 수몰된 고향으로 이주하여 버섯 막사를 짓고, 버섯 재배와 보일러 설치공을 병행하였다. 1991년 보일러 설치공에서 운전공으로 전환하였다. 주로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자연 풍경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1991년 첫 시집 《저 석양》 이후,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2001),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2002)가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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