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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by 혜강(惠江) 2020. 8. 2.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기사 양반! 저 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뻐스가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재*

쓰잘데기* 읎는 소리하지 마시요

저번착*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 시집 《귀가 서럽다》(2010) 수록

 

 

◎시어 풀이

 

*쪼깐 : ’조금‘의 방언

*어칳게 : ’어떻게‘의 방언.

*그란다요 : ’그러십니까?‘ 의 방언.

*물팍 : ‘무르팍’의 준말, ‘무릎’의 속어

*애리다 : ‘아리다’의 방언. 다친 살이 찌르듯이 아프다.

*그라재 : ‘그러지’의 방언.

*쓰잘데기 : ‘쓸데’의 방언(전남)

*저번착 : ‘저번’의 방언

*미쳤능갑소 : ‘미쳤나보네요’의 방언

*어둡당께 : ‘어두우시네’의 방언

 

 

▲이해와 감상

 

 

  이 시 <아름다운 위반>은 이대흠이 출간한 네 번째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 2010)에 실려있는 시편이다. 이 시집에서는 전반적으로 개인적이고 소박한 경험을 소재로 애잔하고 향토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전라도의 시골 마을 도로 위를 운행하는 버스를 배경으로 삼아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무릎이 아픈 한 노인 승객과 버스 운전기사가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옮긴 담화 형식으로 구성된 시편이다. 시적 화자는 이 대화를 통해 따뜻한 인정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시인의 출신 배경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생생하고도 자연스러운 남도 사투리를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구수한 사투리와 투박한 생활 언어를 사용하여 훈훈하고 정감 어린 시골의 정서를 더욱 부각하는 효과를 주고 있으며, 주제를 더욱 생동감 넘치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는 점이 돋보이는 시다.


  1연에서는 노인과 버스 기사의 말이 행을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저쪽으로 조금 돌아서 가자’는 노인의 요청에 버스 기사는 ‘버스가 무슨 택시인 줄 아냐’고 대꾸한다. 다시 노인은 ‘무릎팍’이 아프니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지만 버스 기사로부터 되돌아오는 대답은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것. 이어 노인의 ‘저번착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에 대하여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라고 응대하는 말에는 느청스러운 농(弄)이 섞여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버스 기사의 대답이 무뚝뚝하고 매몰차게 느껴질 법한데 오히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와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한 효과는 2연에서 이어지는 버스 기사의 혼잣말에서 더 두드러진다.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라고 버스 기사는 중얼거린다. 이와 같은 버스 기사의 말은 그가 이전에도 이미 무릎 아픈 노인을 모셔다드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의 제목인 <아름다운 위반>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아름답고 따스한 시골 버스 안의 한 장면을 제시함으로써 향토적이고 정겨운 삶의 모습과 그러한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 시대가 상실한 삶의 온기와 희망을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소박하고 향토적인 삶의 형태로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 시가 전하려는 주제다.

 

 

▲작자 이대흠(1968~ )

 

 

  시인, 전남 장흥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또, 1999년 《작가세계》에 시와 소설이 당선되었다. 시집에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상처가 나를 살린다》, 《물 속의 불》, 《귀가 서럽다》 등이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 《청앵》, 산문집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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