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책
- 이기철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 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 시집 《가장 따뜻한 책》(2005) 수록
◎시어 풀이
*행간(行間) : ① 글의 줄과 줄 사이. 행과 행 사이. ② (비유적으로)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이르는 말.
*단백(蛋白) : ① 알의 흰자위. 난백. ② 단백질로 된 물건.
*엽록(葉綠) : 엽록소. 식물의 세포인 엽록체에 함유된 녹색 색소. 광선을 흡수하여 탄소 동화작용을 행함. 잎파랑이. 클로로필(chlorophyll).
*예지(銳智) : 날카로운 뛰어난 지혜
*신생(新生) : 사물이 새로 생기거나 태어남.
▲이해와 감상
시인은 다채로운 비유를 통해 책이 마음의 양식이면서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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