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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따뜻한 책 / 이기철

by 혜강(惠江) 2020. 8. 1.

 

 

 

따뜻한 책

 

 

- 이기철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 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 시집 《가장 따뜻한 책》(2005) 수록

 

 

◎시어 풀이

 

 

*행간(行間) : ① 글의 줄과 줄 사이. 행과 행 사이. ② (비유적으로)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이르는 말.

*단백(蛋白) : ① 알의 흰자위. 난백. ② 단백질로 된 물건.

*엽록(葉綠) : 엽록소. 식물의 세포인 엽록체에 함유된 녹색 색소. 광선을 흡수하여 탄소 동화작용을 행함. 잎파랑이. 클로로필(chlorophyll).

*예지(銳智) : 날카로운 뛰어난 지혜

*신생(新生) : 사물이 새로 생기거나 태어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다양한 비유법을 통해 책 읽기가 갖는 효용과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직유법과 은유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에서는 직유법을 사용하여 ‘말’을 ‘밥’에 ‘예지’를 ‘엽록’에 비유하였다. 또한 ‘마음의 쌀’, ‘마음의 단백’은 모두 책 속에 담긴 말과 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책 읽기의 효용과 긍적적인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1~5행에서는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밥에 비유하여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고, 글자들이 ‘마음의 담백’이 된다고 진술한다. 6~7행에서는 ‘내가 의자가 되어 줄게 내 위에 앉아라’라며, 사람들이 편안히 책을 읽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8~12행에서는 글자들이 ‘세계의 잠을 깨우는’ 역할을 하며, 책이 세상의 빛이 되는 ‘예지(叡智)를 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13~15행에서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생을 꿈꾸며 세상을 건강하게 하는 비타민이 되어 세상을 새롭게 가꾸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다채로운 비유를 통해 책이 마음의 양식이면서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보여 주고 있다.

 

 

 

▲작자 이기철(李起哲,1943~ )

 

 

  시인,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에 <5월에 들른 고향> 드이 추천돠어 등단했다.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 자기 성찰과 참회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낱말 추적》(1974), 《청산행(靑山行)》(1982), 《전쟁과 평화》(1985), 《우수의 이불을 덮고》(1988),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1989),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1993), 《열하를 향하여》(1995), 《유리의 나날》(1998),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2000), 《가장 따뜻한 책》(2005) 등이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 《리다에서 만난 사람》, 비평집 《시를 찾아서》,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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