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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by 혜강(惠江) 2020. 7. 28.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郊外)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수록

 

 

◎시어 풀이

 

*플랫폼(platform) :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 승강장.

*간신(艱辛)한 : 힘들고 고생스러운.

*가차운 : 가까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서울과 동경의 정거장을 대조하여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순수하고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예찬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현재, 동경 교외의 어느 하숙방에서 희망을 품었던 과거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화자는 지금 본질적인 자아를 잃어버려 슬퍼하고 있지만, 희망을 품었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는 이 시는 과거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과 현재의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의 두 공간을 대조하여 주제를 형상화하고,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1~2연에서 화자는 과거 자신의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기차역(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정거장에서 희밍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정거장’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의 공간인데, ‘서울 조그만 정거장’으로 표현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삶과 고통스러운 삶이 충첩되어 있다. 그리고 ‘희망처럼 기차를 기다려’라는 표현은 기차를 기다리는 구체적 행위가 희망과 사랑이라는 추상적 세계로 나타낸 것으로, 기치를 기다리는 행위가 희망과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기차를 타고 가는 곳은 ‘동경’이며, 동경은 곧 화자에게는 희망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화자는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이는 힘겨운 상황에서 고생스럽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3~4연은 이윽고 화자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이 기차는 달리는 기차에서 옛날을 추억한다.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이것은 기차가 떠날 때 플랫폼의 정경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화자는 ‘비둘기’라는 화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과 대비되는 객관적 상관물을 등장시켜 과거의 부끄럽고 힘겨웠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기차는 아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라고 표현하여 시간과 공간을 이동시켜 ‘기차’를 매개로 옛날의 추억한다.

 

 5~6연에서 화자는 회상을 통해 과거 동경 유학 시절 꿈 많고 의미 있게 지내던 자신의 삶을 그려 보면서 행복해 한다. ‘봄은 가고 – 동경(東京) 교외 어는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 한다’. 여기서 ‘옛 거리에 남은 나’는 현재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품고 있던 과거 자신의 모습으로, 화자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라고 표현하여, ‘기차’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정거장 차가운 언덕에서 서성일’ 현재 자신의 모습과 대비시키고,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라는 말로 과거 자신의 모습만이라도 늘 변함없이 남아 현재 힘든 자신의 모습을 달래 주기를 갈망하며 시를 끝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에는 철저하리만큼 순수함이 묻어져 나온다. 이 시 또한 윤동주의 순수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작품이다. 화자의 현재는 힘들고 고달픈 상태에 있고, 과거는 ‘희망과 사랑’의 시절이었으나 가버릴 추억일 뿐이며, 미래 역시 뚜렷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고 절규한다. 그래서 ‘차가운 언덕’에서 누군가를 마냥 기다리는 화자가 애처로워 보인다.

 

 

▲작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 졸업.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서시>,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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