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족속(族屬)
- 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시어 풀이
*족속(族屬) : ① 같은 문중의 겨레붙이. 족당(族黨). ② 같은 패거리에 속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일컫는 말.
*질끈 : 단단히 졸라매거나 바싹 동이는 모양.
*동이다 : 끈·실 등으로 감거나 둘러 묶다.
▲이해와 감상
윤동주의 시 <슬픈 족속>은 서정성이 넘치는 윤동주의 다른 시와는 달리 일체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2연 4행의 간결함과 절제된 어조 속에 도리어 의젓한 자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목의 <슬픈 족속>은 고난과 슬픔을 겪고 있는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가 쓰인 배경으로 볼 때, 그리고 윤동주 시인이 당시 민족 시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시에 나타난 ‘흰’색의 이미지는 흰옷을 입고 흰색을 숭상한 '백의 민족(白衣民族)', 즉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흰색’을 네 번이나 드러내어 강조하여 너무나도 참혹하고 암담한 식민지의 고통과 그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겨레의 고달픈 삶을 담담히 표현하면서도, 지금의 고난과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문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두 연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각 행이 대구로 이루어져 있고, 1연 2행을 빼고는 ‘주어+목적어+서술어’의 구조로 이루어져 단순·담백하다. 그리고 모든 주어는 ‘흰’이라는 관형어가 붙어 있고, 주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의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흰 치마’, ‘흰 띠’ 등이 그렇다.
이와 같은 우리 민족의 백의(白衣)의 습속은 단순히 옷감 때문에 우연히 선택된 색감이 아니다. 이와 같은 습속은 하늘과 땅을 숭배하는 민족 고유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하늘에 제사드리는 천제(天祭)의식에서 흰옷을 입고 흰떡·흰술·흰밥을 쓴다는 관습이 유래했듯이 백의 의 습속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흰색 숭상은 우리 민족의 삶에 침투하여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백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따라서 ‘순결’, ‘순수’, ‘밝음’을 상징하는 흰색 숭상은 우리 민족의 지향점이 되기에 이르렀다.
1연의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밭에 걸리우다’는 우리 민족의 고달픈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첫 행은 논밭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흰색과 대비시켜 ‘힘겹게 일하는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다음 행의 ‘거친 발’은 힘겨운 삶, 고단한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암담한 식민지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현실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2연에 오면, 우리 민족의 고달픈 현실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부정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흰 저고리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자’라고 다짐한다. 여기서 ‘슬픈 몸집’과 ‘가는 허리’는 슬픔 속에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고 있는 현실로서 우리가 벗어나야 할 부정적 현실이다. 그것을 ‘흰 저고리, 흰 치마’로 가리고, ‘흰 띠’로 질끈 동이자는 것이다. 특히 ‘질끈 동이자’라는 표현은 부정적 현실을 단단히 졸라매어 꼼짝 못 하게 하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이 시에 등장하는 '수건, 고무신, 저고리, 치마, 띠'로 볼 때, 전체적으로 여성 의상을 나타냄으로써 당시에 학대받던 여성에 초점을 맞춘 듯한 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제유법(提喩法)에 의하여 슬픈 동족 전체를 대변시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여인네의 ‘검은 머리’, ‘거친 발’, ‘슬픈 몸집’, ‘가는 허리’는 가난하고 피로에 지친 민족의 고달픈 현실을 상징하는 시어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 시는 '백의민족'으로 불리던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입던 ‘흰색’의 의생활을 통해서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의 민족성인 ‘순수’하고 ‘밝음’의 세계를 지향하는 동시에 암흑의 상황을 밀어내려는 백의민족의 의연한 저항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작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의 명동천에서 출생. 연희 전문을 졸업하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같은 해 가을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1937~1938년에 《카톨릭 소년》지에 <병아리>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 등을 발표하였고, 연희 전문 재학 시절에는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 학생란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발표하였다. 1943년 친우인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잡혀 일본 후코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옥사했다.
그는 일제 암흑기 저항 시인으로, 고고하고 준열한 민족적 서정시를 썼다. 사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 되었고, 그 대표작으로 <서시>, <십자가>, <자화상>, <참회록>, <별 헤는 밤> <간(肝)>, <새로운 길>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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