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간(肝) / 윤동주

by 혜강(惠江) 2020. 7. 26.

 

 

 

간(肝)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 1941년 작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수록

 

▲시어 풀이

*둘러리 : ‘둘레’의 방언

*여위다 : 몸의 살이 빠져 마르고 파리하게 되다.

*침전(沈澱) : 액체 속의 물질이 밑바닥에 가라앉음. 또는 그 물질.

 

▲작품 이해를 위한 참고사항

*구토지설(龜兎之說) : 삼국사기에 실려 전해지는 고대 설화이다. 토끼전의 근원 설화로, 거북과 토끼가 지혜를 겨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이 있으면 고칠 수 있다는 의원의 말을 믿고 별주부(거북)를 시켜 토끼를 유혹하여 잡아와 간(肝)을 꺼내려 하는데, 이때 토끼가 꾀를 내어 간을 씻어 육지에 놓고 왔다고 하며 가져와야 한다고 하니, 이 말을 믿고 육지로 토끼를 다시 돌려보내는 어리석은 용왕과 죽음에서 지혜롭고 슬기롭게 탈출하는 토끼를 의인화하여 지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프로메테우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족의 영웅이다.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인간에게 훔쳐다 준 죄로 코카서스 산중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에게 지혜를 준 대가로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였기에 거룩한 희생의 이미지로 원용될 때가 많다. 인간을 위해 신을 반대하고 혼자 도움을 준 데다가 절대자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몸으로 와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대비되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영감을 주었고, 두 주인공 이반과 알렉세이에게서 그 이미지가 드러난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토끼가 소중한 간을 잃을 뻔했던 귀토지설(龜兔之說)과 인류를 위해 불을 훔친 죄로 산채로 독수리에게 간(肝)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차용, 간을 매개로 하여 인간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희생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토끼와 프로메테우스는 모두 간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데, 여기서 간은 생명과도 같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것(양심, 존엄)을 의미한다. 시적 화자의 의지적인 태도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때, 간은 시적 화자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나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적 화자인 ‘나’는 양심을 더럽힌 것을 반성하면서 자신을 희생하여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청유형 어미를 사용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귀토지설’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결합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이 간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두 존재는 어두운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는 시적 화자와 동일시된다. 화자는 동일시하고 있는 소재를 통하여 화자의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1~2연에서 화자는 양심과 존엄성을 지키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에서 ‘습한 간’은 유혹에 빠져 더럽혀진 양심과 존엄을 의미하며, 이것을 햇볕 바른 바위 위에 ‘말리우자’는 청유형으로 양심을 지키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구토지설을 결합하여, ‘간을 지키자’라는 청유형을 사용하여 양심과 존엄성을 지키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3~4연에서는 고통 속에 있는 정신적 자아를 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라고 진술한다. 여기 등장하는 여윈 독수리는 화자의 나약해진 정신적 자아로서, 화자는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먹게 하여 육체적 자아인 ‘나’에게 고통의 인내를 부여하는 동시에 정신적 자아인 ‘너’를 살찌게 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며 고통을 인내하겠다는 화자의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5연에서 간을 노리는 ‘거북이’에게 화자를 유혹하는 ‘용궁의 유혹’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6연에서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숙명적으로 참고 인내하는 자세로 양심적 삶을 회복하는 위대한 희생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는 구토지설, 프로메테우스 신화 등 동서양의 고전을 원용하여 화자 자신의 양심, 존엄, 생명력 혹은 시대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써 ‘간’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시대에 대한 울분과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에 문학적 평가도 높다.

  또,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억센 문체와 굳은 의지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작품 대부분이 자아 성찰적이고 고백적인 어조로 되어 있어 소극적인 저항 의식을 담고 인 데 비해, 이 시는 소극적인 현실 대응 방식에 대한 자책과 울분을 격정적인 어조로 표현하고 있어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

  윤동주의 친한 후배인 국문학자 정병욱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윤동주는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자비출판을 단념(斷念)한 직후인 1941년 11월 29일에 좌절감에 빠져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작품 발표와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지성인(知性人)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리라. 그런 까닭인지는 모르나, 일반적으로는 자기성찰을 넘어 시대의 엄혹함을 견뎌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발현된 작품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다른 주요 작품을 관통하는 부끄러움의 정서에서 한 발짝 나아간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작가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1941년 연희전문 졸업.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서시>, <자화상>(1939), <참회록>,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그의 시의 특성은 고요한 내면세계에 대한 응시를 순결한 정신성과 준열한 삶의 결의로 발전시킨 데 있다. 특히, 그가 생애를 마감할 무렵인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시들은 그가 저항 시인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시는 근본적으로 그의 생애의 흐름과 일치하며 발전하는데, 개인적 자아 성찰에서 역사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인식이 확대되는 것이다.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자신의 부끄러움 없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시대적 양심을 잃지 않은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종말에 대한 희생적 예언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길 / 윤동주  (0) 2020.07.27
길 / 윤동주  (0) 2020.07.26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0) 2020.07.25
서시(序詩) / 윤동주  (0) 2020.07.25
자동문 앞에서 / 유하  (0) 2020.07.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