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적절한 상징과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도덕적 순결성에 대한 고뇌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서시’는 시집의 첫 장을 장식하는 첫 번째 시라는 의미이다.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의 첫머리에 붙여진 작품으로, ‘서시(序詩)’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 전체의 내용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시에는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을 개략적으로 암시하는 동시에 자신의 시적 지향의 방향과 나아가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식민지 백성의 지식 청년으로서 겪어야 했던 존재론적 고뇌와 함께 순수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의지를 투명한 서정으로 이끌어 올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연 9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시간의 이동(과거-미래-현재)에 따라 시상이 첫 부분(1~4행)에서 부끄럼이 없는 순수한 삶을 살고자 했던 화자의 의지와 고뇌를 과거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다. 둘째 부분(5~8행)에서는 순결한 삶에 대한 미래의 순결한 삶에 대한 화자의 의지와 다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9행)에서는 현대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자각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의미상 서로 대립적인 이미지의 시어로 시적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늘’과 ‘별’은 ‘밝음’과 ‘희망’의 이미지로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 셰계를 상징하며, 반대로 ‘바람’과 ‘밤’은 ‘어둠’과 ‘시련’의 이미지로 현실적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 부분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화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하늘’은 윤리적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며, 화자의 삶의 지향성과 방향성을 의미한다. 화자는 그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죽는 날까지’ 세속적 삶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잎새를 흔들 정도의 ‘바람’과 같은 작은 갈등이나 시련에도 괴로워했다. 여기서 화자가 괴로워한 이유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에서 오는 고뇌 때문이다. 이렇게 화자는 아주 작은 심리적 갈등이나 시련에 괴로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순결한 도덕적 삶을 살고자 소망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순수한 소망과 양심으로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미래를 살고자 하는 화자의 결의와 다짐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화자가 지향하는 순수와 희망의 세계이며, 이런 세계를 소망하기에 삶의 고통에 부대끼는 ‘모든 죽어가는 것’까지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 즉 부끄럼이 없는 삶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겠다고 미래에 대한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운명애의 결의와 다짐은 험난한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운명과 맞서서 절망을 극복하려는 자기 구원의 최선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5음절 한 문장으로, 화자가 처한 어두운 상황을 자각하면서 도덕적 순결성에 대한 화자의 의지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오늘 밤‘은 현재의 암담한 현실을 상징하며,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고난과 시련 혹은 일제 강점하의 시대 상황으로서,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상황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화자의 새로운 자각인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삶, 즉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즉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현실에 괴로워하면서도 ‘별’과 같이 이상적인 삶,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민족을 위해 고난과 시련의 삶을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시대에 자신의 부끄러움 없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시대적 양심을 잃지 않은 시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1941년 연희전문 졸업.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서시>,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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