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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by 혜강(惠江) 2020. 7. 25.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둣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출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수록

 

◎시어 풀이

*구리거울 : 패망한 조선 왕조의 유물.
*왕조(王朝) : 같은 왕가에 속하는 통치자의 계열, 또는 그 왕가가 다스리는 시대.
*참회(懺悔) :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침.

*참회록(懺悔錄) : 지난날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깨닫고 깊이 뉘우치는 내용을 적은 기록. 참회의 고백 기록.
*운석(隕石) :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의 잔해.

 

▲이해와 감상

  ‘참회록’은 지난날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깨닫고 깊이 뉘우치는 내용을 적은 기록이다. 이 작품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화자가 암울한 시대에 망국민으로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나라를 잃어버린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거울’이라는 상징적 시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있는 이 시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참회(1~3연)→암울한 현실에서의 자기 성찰(4연)→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5연)’라는 내용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고백적인 어조를 사용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시의 1∼3연은 모두 참회의 내용으로, 화자가 ‘과거(1연) → 현재(2연) → 미래(3연)’의 시점으로 이동하며 자신의 삶을 차례로 참회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우선 1연에서는 망국민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 역사 속의 삶에 대하여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고 과거 역사에 대해 참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으로, ‘자기 성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구리거울’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유물로서의 거울로, 화자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봄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구리거울’이 ‘파란 녹이 낀’ 역사적 유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자아의 성찰에서 범위를 확장하여 역사와 민족에 대한 성찰로까지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즉,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화자는 망국민으로서 살아온 자신에 대해 욕됨을 느낀다.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표현에는 역사에 대한 반감과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아울러 치욕적인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온 삶을 반성하며 성찰하고 있다.

  2연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국민으로서 아무런 기쁨도 없이 무기력하고 괴롭게 살아온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라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참회하되, 부끄러워서 길게 늘어놓을 수가 없다는 고백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자신이 지나온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기쁨 없이 살아왔음을 참회하고 있다.

  3연에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를 다시 참회한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는 즐거운 날’ 즉 조국 광복의 날에 쓰게 될 ‘참회록’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는지, 현재의 참회에 대한 미래의 참회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즐거운 날’을 생각해 볼 때, 화자는 치욕스러운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소극적 참회에만 그쳤던 현재의 참회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의 자기 성찰은 항상 ‘부끄러움’을 수반한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부끄러움’은 좀 더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절대적 윤리의 표상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동주 시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시인의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4연에 와서, 화자는 앞서 행한 참회의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치열한 자기 성찰의 의지를 보여 준다. 화자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라고 한다. 이 시에서 거울을 닦는 시간적 배경인 ‘밤’은 화자가 부끄러운 자아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시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어두운 현실, 즉 암담한 시대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즉, ‘밤’은 화자의 자기 성찰의 시간이면서 우리 민족이 처한 암울한 시기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 시간은 자아의 참모습이 나타나는 때로, 3연의 ‘그 어느 즐거운 날’과 대립된다. 또한 화자가 온몸을 다하여 ‘밤’에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는 모습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볼 수 있다.

  5연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로 잘못된 현실과 맞서는 삶을 선택하지만 미래에 맞게 될 삶이 비극적이다. ‘그러면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여기서, ‘운석’은 지구상에 떨어진 별똥으로 죽음과 절망의 이미지로서, 운석 밑을 홀로 걸어가는 미래의 모습이 ‘거울’ 속에 ‘슬픈 사람의 뒷모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화자가 보여주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치열하지만 잘못된 현실에 맞서기에 개인은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결코 비관적 체념이 아닌, 시대적 양심의 실천을 바탕으로 한, 보다 철저한 자기 성찰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하였다. 그의 시에는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순교자적 신앙의 길을 선택한 한 청년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 <참회록>은 바로 그 기록이다.

 

▲작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 졸업.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서시>,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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