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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태초(太初)의 아침 / 윤동주

by 혜강(惠江) 2020. 7. 29.

 

 

 

 

 

태초(太初)의 아침

 

 

- 윤동주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빠알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이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1941. 5. 31)에 쓴 적품으로 알려져 있다. 《성서》의 창세기(創世記)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태초부터 선과 악이 공존하였다는 깨달음을 통해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고자 한 작품이다.

 

 제목인 ‘태초의 아침’은 ‘밝음’의 이미지이며, ‘그 전날 밤’은 ‘어둠’의 이미지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 한편 ‘빠알간 꽃’, ‘어린 꽃’, ‘사랑’은 선(善)의 이미지이며, ‘뱀’과 ‘독’은 악(惡)의 이미지로 이 둘은 서로 대조되지만, 이 시에서는 공존(共存)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이 시는 전 4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의미상 두 개의 문장으로 볼 수 있다. 1~2연이 한 문장, 3~4연이 또 하나의 문장인데 3연과 4연은 도치(倒置)되어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창조의 아침’에 ‘빠알간 꽃’이 피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세상이 창조된 ‘태초(太初)의 아침’은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아침’이 아닌 ‘아침’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간의 개념이 생기기 이전,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한 최초의 아침이라는 의미로, 밝음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2연은 ‘햇빛이 푸른데/ 빠알간 꽃이 피었네’가 도치된 것이다. 여기서 ‘햇빛이 푸른데’는 창조 과정의 상황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며, ‘빠알간 꽃’은 무(無)의 상태에서 창출된 창조물을 가리킨다. 즉, 창조 이전 흑암과 혼돈의 상황에 빛이 들어오면서 생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햇빛이 푸른데’로 표현한 것이며, ‘빠알간 꽃’은 그런 과장을 거쳐 탄생된 창조물이다. 특히, 이 꽃은 4연의 ‘어린 꽃’과 연결되어 ‘사랑’의 이미지인 선(善)을 상징한다.

 

 그런데 3연과 4연 역시 도치되어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그 전날 밤에 마련된 것이며, 이들이 공존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그 전날 밤’은 태초 이전의 암흑의 상태로 ‘아침’과는 대조적인 이미지인데 화자는 창조 이전부터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창조주의 뜻에 따라 준비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류 타락과 관련된다. 즉, 창조주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는데, 아내인 하와가 창조물 중에 가장 교활한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생명마무의 열매인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결국은 ‘에덴 동산’이라는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인간을 유혹한 ‘뱀’의 존재는 신의 사랑을 파괴하는 적대적인 존재로서, 곧 뱀의 유혹은 인간에게 ‘독(毒)을 제공한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어린 꽃’은 신의 사랑스런 창조물이면서도 뱀의 유혹으로 흔들리며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함께’라는 시어로 두 세력이 대립하면서도 공존(共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혹자는 이 시에 드러낸 화자의 인식, 태초 이전 선과 악이 신에 의하여 준비되고 계획되었다는 점을 들어 기독교 세계관과 배치된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창조주는 절대선(絶對善)이므로 창조 이전에 ‘죄’의 요소를 미리 계획하고 창조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도식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 교리에 배치되므로 기독교 시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첫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기 이전에도 죄(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와 선악의 개념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대세다.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죄가 들어왔다'라는 표현은, 이전에는 죄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는데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라, 죄라는 관념은 있었으나 다만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시인은 시인일 뿐, 교리를 설명하는 신학자가 아니다. 시인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으로 창조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 졸업.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서시>,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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