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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향 앞에서 / 오장환

by 혜강(惠江) 2020. 7. 21.

 

 

 

 

고향 앞에서

 

 

-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잰내비*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인문평론》(1940) 수록

 

 

◎시어 풀이

 

*울멍울멍 : 울음이 터질 듯한 모양.

*잰내비 : ‘잔나비’의 방언. 원숭이

*예제 : 여기저기

*장꾼 : 장(場)에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

*상고(商賈) : 장수. 떠돌며 좌판을 벌여 놓고 하는 장사

*디디는 : 누룩이나 매주 따위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는.

 

 

▲이해와 감상

 

 

 고향은 모든 사람에게 삶의 안식처요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그러나 고향은 있되 그 고향을 갈 수 없다면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시는 고향을 바로 앞에 두고서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화자의 깊은 회한과 자책의 정서가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향 상실의 아픔과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청각과 후각 등 다양한 감각적 표현으로 이러한 표현은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얼었던 강이 풀리는 이른 봄의 정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흙이 풀리는 내음새’는 해빙기의 봄을 후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것이며,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는 청각적 심상으로 쓸쓸한 분위기를 형상하고 있으며,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나려 간다’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화자의 마음을 의태어를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3연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나룻가를 서성이다 주막에서 만난 늙은이와 아픔을 나누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룻가’는 고향으로 갈 수 있는 통로인 동시에 고향에서 누군가가 오는 장소이다. ‘주막’ 또한 고향으로 가거나 고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들러 잠시 쉬는 곳이다. 이 두 장소를 통해 화자는 소통과 만남을 기대하지만, 고향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듯하리라’는 표현은 지나가는 행인의 손이라도 잡아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화자의 심정을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며, ‘누구와 함께 지나간 날을 이야기하랴’에서 ‘지나간 날’은 고향에 대한 추억을 나타낸다. 그리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는 표현은 화자의 고향 상실의 슬픔을 민족의 보편적 슬픔으로 환치하여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도록 한 표현이다.

 

 그리고 4~5연은 자신이 떠난 후의 슬픈 고향 소식을 ‘주인집 늙은이’에게서 전해 들은 화자는 고향에 모신 조상을 떠올리며 쓸쓸해 하면서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잰내비 우는 산기슭’에서 ‘잰내비’는 향수를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고향의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청각적 심상으로 드러내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라는 표현은 고향에 가고 싶은 화자의 심정을 시각적인 심상을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고향은 예전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고,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조상의 무덤밖에 없는, 평화로운 고향은 이미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음을 알고 화자는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화자는 고향을 드나드는 ‘장꾼들’에게 고향의 소식을 묻고 있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라고. 여기서 여기저기 떠돌며 좌판을 펴고 장사하는 ‘장꾼들’은 고향의 정취를 확인해 줄 존재인 것이다. 떠돌이 장사꾼들에게서 고향의 정취만이라도 확인하려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기만 하다.

 

 마지막 6연은 화자는 예전의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의 기억 속 고향은 ‘누룩을 디디는 소리’가 들리고,‘누룩이 뜨는 내음새’가 풍기는 ‘전나무 우거진 마을’이다. 화자는 청각과 후각과 시각적인 심상을 통해 고향의 모습을 그려내며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오장환의 이 시는 식민지 치하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눈 앞에 실제하는 고향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시는 원래 <향토 망경시(鄕土望景詩)>라는 제목으로 1940년 《인문평론》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이 있어도 그 품에 안길 수 없는 사람은 고향을 잃은 자나 다름없다.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비극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서도 갈 수 없는 화자의 처지는 깊은 회한과 자책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 시는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향 상실의 아픔을 느낄 뿐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귀향'을 소재로 한 시이면서도 상실감의 대응 방법으로서 고향에 되돌아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 작가 오장환(吳章煥 1918 - ?)

 

 

  시인. 충북 보은 출생. 1931년 《조선 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36년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문명 비판적인 시와 보들레르적인 시를 많이 썼다. 그러나 1940년 이후에는 서정적 사색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시를 썼다. 해방 후 선명한 정치 노선을 드러내며 참여적인 시를 활발하게 발표하였고, 그 뒤 월북했다. 시집으로 《성벽》(1937), 《헌시》(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등을 간행하였다.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오장환 전집》(전2권)이 간행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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