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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ㅁ놀이 / 오은

by 혜강(惠江) 2020. 7. 20.

 

<출처 : 네이버블로그 '혜연맘'>

 

 

ㅁ놀이

 

- 오은

 

  오늘도 너는 말놀이를 한다. 재잘재잘. 도중에 말이 막히면 물을 먹는다. 벌컥벌컥. 그리고 너는 물놀이를 한다. 첨벙첨벙. 도중에 배가 고프면 너는 미음을 먹는다. 허겁지겁. 그리고 너는 맛놀이를 한다. 우적우적. 도중에 배가 부르면 너는 몸놀이를 한다. 폴짝폴짝. 그리고 너는 망놀이*를 한다. 호시탐탐.* 도중에 도둑을 잡으면 너는 멋놀이*를 한다. 찰랑찰랑. 그리고 너는 무(無)놀이*를 한다.

  놀이를 안 하는 게 지루해지면 너는 문놀이를 한다. 찰칵찰칵. 도중에 잠이 오면 너는 몽(夢)놀이*를 한다. 꿈틀꿈틀. 그리고 꿈에서 너는 말놀이*를 한다. 딸깍딸깍. 말을 타는 도중에 멀미를 하면 너는 맥놀이를 한다. 두근두근. 그리고 너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멱놀이를 한다. 어푸어푸. 도중에 머리카락이 잡히면 너는 몇놀이를 한다. 십중팔구. 그리고 너는 맘놀이를 한다. 무럭무럭. 도중에 또다시 배가 고프면 너는 맘놓고 마음을 먹는다. 거푸거푸. 너는 못놀이를 한다.

  놀이를 못하는 게 억울해서 너는 ㅁ놀이를 한다. 입(口)으로 들어가서 뿔난 누군가가 ㅂ을 던져줄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 시집《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2013) 수록

 

 

◎시어 풀이

 

*호시탐탐(虎視眈眈) :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기회를 노리고 가만히 형세를 살핌. 또는 그런 모양

*망놀이 : 멀리서 동정을 살피는 놀이

*멋놀이 :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놀이

*무(無)놀이 : 아무 것도 안 하는 놀이, 즉 무의미한 놀이의 반복을 가리킴.

*몽(夢)놀이 : 꿈꾸는 놀이

*말놀이 : 말 타는 놀이

*맥놀이 : 맥을 짚어보는 놀이

*멱놀이 : 시냇가에서 하는 물놀이

*몇놀이 : 개수나 횟수를 세는 놀이

 

 

▲이해와 감상

 

 

  어릴 적 누구나 끝말잇기 놀이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을 이용한 놀이는 참신함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는 우리 한글의 자음의 하나인 ‘ㅁ’을 활용한 놀이를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놀이에 빠진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日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말놀이를 관찰하는 화자는 인간의 유희적 속성을 말놀이에 빠진 ‘너’로 대체하여 그 형태를 관찰하면서 ‘ㅁ’으로 시작하는 놀이인 언어유희(言語遊戲)를 통해 다양한 음성상징어를 활용하여 시 전체의 리듬감을 살리면서, 동음 어휘의 연쇄적 반복을 통해 시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첫머리에서 ‘오늘도 너는 말놀이를 한다. 재잘재잘’이라고 진술한다. 이것은 말놀이가 일상적인 반복 행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재잘재잘’은 말놀이에 대응하는 음성상징어로서 운율감을 드러내고 말놀이에 생동감을 주어 표현력을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 형태는 말이 막힐 때 물을 마시는 ‘벌컥벌컥’과 물놀이의 ‘첨벙첨벙’까지 연쇄법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배고픔과 배부름의 대조적 상황을 설정하여 대구적 표현으로 배고파 미음을 먹을 때는‘허겁지겁’, 맛놀이를 할 때는 ‘우적우적’, 반대로 배가 불러 몸놀이를 하면서 ‘폴짝폴짝’, 망놀이를 하면서 ‘호시탐탐’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허겁지겁’, ‘우적우적’, ‘폴짝폴짝’, ‘호시탐탐’은 음성상징어 중에서도 의태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도둑을 잡으면 ‘찰랑찰랑’ 멋놀이, ‘그리고 너는 무(無)놀이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놀이를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진정한 놀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2연의 서두는 앞의 ‘무(無)놀이’와 연관하여 ‘놀이를 안 하는 게 지루해지면’으로 시작한다. 문놀이에는 ‘찰칵찰칵’, 몽(夢)놀이에는 ‘꿈틀꿈틀’, 말놀이는 ‘딸깍딸깍’, 맥놀이에는 ‘두근두근’, 멱놀이에는 ‘어푸어푸’, 몇놀이에는 ‘십중팔구’, 맘놀이에는 ‘무럭무럭’, 맘 놓고 마음을 먹을 때는 ‘거푸거푸’. 그리고 말미에 ‘너는 못놀이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못놀이’는 놀이를 마음 놓고 하면서 놀이를 못한다는 것으로, 이것 역시 1연에서처럼 진정한 놀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아무튼 거침 없이 이어지는 ‘너’의 ‘ㅁ놀이’인 것이다.

 

  마지막 3연에서는 여전히 오늘도 놀이를 시작하다가도 놀이를 안 한다고 했다가 다시 놀이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놀이를 못하는 게 억울해서 너는 ㅁ놀이를 한다/ 입(口)으로 들어가서 뿔난 누군가가 ㅂ을 던져줄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ㅁ놀이’를 계속하겠다는 ‘너’의 모습을 보여준다. ‘너’는 놀이다운 놀이를 못하는 게 억울하여 ‘ㅁ놀이’를 한다는 것이며, ‘입(口)’은 ‘ㅁ놀이’와 한자어 구(口)의 유사성을 활용한 것이며, ‘ㅂ’을 제시한 것은 놀이들 간의 연쇄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서 ‘ㅁ놀이’ 다음으로서의 ‘ㅂ놀이’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것은 계속 ‘ㅁ놀이’를 하다가 누군가가 ‘ㅂ놀이’를 던져줄 때까지 나오지 않는 모습에서 언어유희(言語遊戲)와 리듬감을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놀이보다는 외연에 치우친 모습이 드러나 있다.

 

  오은 시인은 남다른 ‘언어유희’의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시인 정재학)거나, ‘스스로 생장한 언어의 힘으로 새로운 시적 규율을 만들어가는 시인’(시인 이재훈)이라 거나,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를 의심하고 질문하게 한다’(평론가 허윤진)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시는 얼핏 보면 말장난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장난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밑바탕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동음 또는 유사 음을 활용하거나 도치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시를 쓰고 있다.

 

 

▲작자  오은(1982~  )

 

 

  시인.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한국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가면서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으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한 방향을 제시해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2009),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2013), 《유에서 유》(2016), 《왼손은 마음이 아파》(2018), 《나는 이름이 있었다》 (2018) 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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