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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찬밥 / 문정희

by 혜강(惠江) 2020. 5. 17.

 

 

 

 

 

찬밥

 

 

-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우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수록

 

 

시어 풀이

 

*서릿발 : 서리가 땅바닥이나 풀포기 따위에 엉기어 삐죽삐죽하게 성에처럼 된 모양. 또는 그것이 뻗는 기운.
* : 칼날이나 그릇 등의 가장자리.
*훑어 : 붙은 것을 깨끗이 다 씻어 내어.

*달그락거리던 : 작고 단단한 물건이 부딪쳐 소리를 내던.

 

 

이해와 감상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찬밥을 먹으며 가족을 위해 따스한 밥을 지어 주시고 홀로 찬밥을 먹던 어머니를 되돌아보고, 희생적 삶을 사셨던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시는 화자의 현재 모습과 어머니의 과거 모습을 중첩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1~6행에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찬밥을 먹는 화자의 현재의 모습을, 7~14행에서는 가족을 챙기며 찬밥을 드셨던 과거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15~ 19행에서는 찬밥을 드신 어머니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표현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이 시의 화자는 아픈 몸을 일으켜 '찬밥'을 먹고 있다. '찬밥'은 어머니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소재이면서, 항상 가족들에게 따스한 밥을 먹이고 정작 자신은 '찬밥'을 드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화자는 그 찬밥을 먹으며 찬밥 속에 서릿발에 목을 쑤신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찬밥의 거칠고 뻣뻣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면서도, ‘찬밥을 드셨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어옴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화자는 어머니가 드셨던 찬밥을 먹으며, 화자는 희생적인 삶을 사셨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 속에는 가족들이 남긴 찬밥과 반찬을 먹으며 따스한 사랑을 나눠주시고, 깊은 밤까지 잠을 주무시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모습이다. 화자는 그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 찬밥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존재가 마치 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보낸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 대목에서 나 오늘/ 찬밥이 되어라는 표현으로 찬밥을 드시던 어머니와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어머니의 삶을 쓸쓸하게 인식한 화자는 어머니와 만나는 모습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이러한 표현으로 볼 때, 지금 화자는 찬밥을 드셨던 어머니라는 위치에 있음이 분명하고, 그래서 화자가 '세상의 찬밥'이 되었다는 의미는 세상에서 '어머니'에 대한 평가가 '찬밥'과 같지만, 그 안에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 대상이 화자만의 어머니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모든 이의 어머니를 대신한 것으로 바라보고, ‘찬밥'을 먹으면서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스스로 어머니로서의 삶에 대한 가치(희생과 사랑)를 다시금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작자 문정희(文貞姫: 1947 ~ )

 

 

 여류 시인.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69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였다. 그의 시는 여자들에게 살과 피를 주고, 잃어버린 욕망을 되찾아준다. , 서정을 주제로 하여 불교 미학의 순수성을 우리말로 표현하여 보다 애송적(愛誦的)인 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집으로 첫 시집인 꽃숨(1965) 이후 문정희 시집(1973), 새떼(1975),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찔레(1987), 우리는 왜 흐르는가(1987),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1988),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주세요(1990),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1992), 남자를 위하여(1996),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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