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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흙 / 문정희

by 혜강(惠江) 2020. 5. 20.

 

 

 

 

 

 

-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수록

 

 

◎시어 풀이

*태반 : 포유동물이 임신했을 때, 모체의 자궁 내벽과 태아 사이에 있어 영양 공급 · 호흡 · 배설 등의 작용을 하는 원반 모양의 기관.
*귀의처 : 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하는 곳.
*도공 : 옹기장이. 옹기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두레박 : 줄을 길게 달아 우물물을 퍼 올리는 데 쓰는 도구. 바가지나 판자 또는 양철 따위로 만든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흙’의 속성인 ‘생명의 태반’과 ‘귀의처’에 주목하여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 ‘흙’을 예찬하고 있다.

 

  ‘흙’을 ‘그’로 의인화하여 예찬하고 있는 이 작품은 ‘흙’의 이름을 울음소리와 연결하여 눈물의 이미지로 연결시키고 있으며, 반어와 역설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1연을 3연에서 심화 반복함으로써 ‘흙’이 가진 희생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3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1연은 ‘흙’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희생의 이미지를, 2연은 생명의 근원이자 귀의처인 ‘흙’을, 3연은 ‘흙’에 대한 부러움과 흙의 희생에 대한 공감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시의 화자인 ‘나’는 1연에서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흙)의 이름이다.’라며 흙에 대해 예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흙 흙 흙'하고 흙을 부르면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눈이 젖어온다’라고 하여, 아픔과 희생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눈물’을 통해서 ‘흙’의 아픔에 대해 화자의 공감을 드러낸다.

 

  2연에서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라는 표현은 ‘흙’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우는 모태이며, 언젠가는 돌아와서 의지할 곳임을 반어법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를 뒷받침하는 한 예로, 화자는 도공이 흙으로 ‘달덩이’를 낳고 농부가 흙에 씨앗을 뿌려 ‘한 가마의 곡식’을 수확하는 흙의 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모성성'은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을 주로 작품화시킨 화자의 시적 경향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있다.

 

  3연은 1연의 내용을 심화 반복하여 '흙 흙 흙'하고 흙을 부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와 ‘하늘이 우물을 파 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며, 흙의 희생에 대한 공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흙’을 의인화하여 예찬하면서, 흙의 속성을 ‘생명의 태반’, ‘귀의 처’에 비유하며 흙의 모성성에 대해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시적 화자의 정서를 진솔하게 형상화하였다.

 

 

▲작자 문정희(文貞姫: 1947 ~ )

 

 

  여류 시인.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였다. 그의 시는 여자들에게 살과 피를 주고, 잃어버린 욕망을 되찾아준다. 또, 서정을 주제로 하여 불교 미학의 순수성을 우리말로 표현하여 보다 애송적(愛誦的)인 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집으로 첫 시집인 《꽃숨》(1965) 이후 《문정희 시집》(1973), 《새떼》(1975),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찔레》(1987), 《우리는 왜 흐르는가》(1987),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1988),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주세요》(1990),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1992), 《남자를 위하여》(1996),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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