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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겨울 일기 / 문정희

by 혜강(惠江) 2020. 5. 16.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보현화'>

 

 

 

겨울 일기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서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하게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서로 기대서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 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 시집 : 어린 사랑에게(199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한겨울에 사랑하는 임을 잃은 상실감으로 외부와 단절한 채 자신이 겪는 이별로 인한 슬픔과 절망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낮고 어두운 어조로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의 시간을 겨울 이미지로 설정하여 절망적·체념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 객관적 상관물인 자연의 대조와 변형된 수미상관의 구조로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극도의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차갑고 추운 겨울, 임과 이별하게 된 시적 화자는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편히 지냈다라고 진술한다. 말 그대로 편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임과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비는 반복되던 기도(독백),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한 고민(바람)도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겨울 편히 지냈다라는 표현은 이별의 고통으로 앓아누운 화자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연은 실연의 고통으로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된 화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 들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에서 벌거벗은 나무는 화자의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며, ‘추워 울어도는 감정 이입된 표현이다. 그래서 화자는 추위에 떨고 있는 처지가 되어 서로서로 기대어 숲이 되는 숲과는 달리, 서로 의지할 대상도 없이 홀로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고립된 처지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화자는 3연으로 이어지면서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 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반추 동물은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화자는 직유법을 사용하여 죽을 것 같은 고통만 반추 동물처럼 반복해서 씹으면서 무기력하게 '누워서 편히 지냈다.'라고 한다. 여기서 거내 씹었다라는 표현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표현한 것이고, ‘누워서 편히 지냈다라는 표현은 역시 고통으로 누워 지내는 형편을 반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변형된 수미 상관의 구조를 사용하면서, ‘이 겨울이라는 명사로 시상을 종결함으로써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죽도록 사랑한 대상을 잃고, 모든 것에 관심을 끊고 체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떤 분노나 열정도 남아 있지 않은 채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죽음만을 생각하며 누워 있는 것뿐이라는 상황을 말이다. 화자는 그러한 상황을 겨울 이미지와 객관적 상관물을 사용하여 반어적 표현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작자 문정희(文貞姫: 1947 ~ )

 

 

 여류 시인.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69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였다. 그의 시는 여자들에게 살과 피를 주고, 잃어버린 욕망을 되찾아준다. , 서정을 주제로 하여 불교 미학의 순수성을 우리말로 표현하여 보다 애송적(愛誦的)인 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집으로 첫 시집인 꽃숨(1965) 이후 문정희 시집(1973), 새떼(1975),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찔레(1987),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1988),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주세요(1990), 어린 사랑에게(1991),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1992), 남자를 위하여(199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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