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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찔레 / 문정희

by 혜강(惠江) 2020. 5. 16.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시집 찔레(1987)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랑의 고통을 이겨 낸 화자를 '찔레'로 비유하여, 임과의 이별로 인한 사랑의 아픔을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화자인 는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의 아픔을 수용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랑의 아픔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식하고 있는 역설적 발상을 드러내는 이 시는 의미상 첫 연과 마지막 연이 대응을 이루고 있는 수미 상관의 구조이다. 그리고 1, 3, 마지막 연에서도 서 있고 싶다라는 유사한 내용이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화자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초록이 흐르는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라고 한다. ‘초록이 흐르는 계절은 생명력이 고조되는 시기이며, 화자는 이때를 맞아 가슴에 꽁꽁 묻어 두었던 그리움을 열어 찔레로 서 있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찔레는 임에 대한 화자의 사랑을 담은 대상물이다.

 

 2~3연에서 화자는 사랑하던 그 사람이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이라며, 조금 더 다가서지 못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한다. 그래서 화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으로 오랜 방황을 하며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황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는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아팠던 사랑의 추억을 털어버리고,꽃이 되었을 이름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라고 한다. ‘초록의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는 이 대목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아파하던 추억들을 털어버리고, 이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송이송이 흰 찔레꽃에 담아 피우겠다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송이송이 흰 찔레꽃송이송이는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부사어로 '많음, 풍성함, 여유, 아름다움' 등의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시어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의 속성을 이용하여 절절했던 사랑의 아픔풍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꽃 피우고자 하는 중의적 내용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4~5연에서는 화자가 잠시, 사랑의 아픔으로 실의에 빠졌던 나날들을 돌아본다. 그때는 사랑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날이 많았고,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라고 회상한다. ‘아픔이 출렁거려라는 표현은 아픔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화하여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6~7연에서 화자는 그 시절의 아픈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아픔이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새롭게 태어난 모습을 발견한다. ‘예쁘고 뾰족한 가시는 찔레가 그 안에 가시를 숨기고 있으나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속성에 빗대어 사랑의 아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화자는 새로운 모습을 갈아입은 초록의 계절에, 슬퍼하지 말고,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라는 말로 지난날 사랑의 아픔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시가 지니는 정신적인 가치는 아픈 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담아 두고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픈 사랑을 떠올리며, 사랑의 아픔까지도 포용하고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작자 문정희(文貞姫: 1947 ~ )

 

 

 여류 시인.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69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였다. 그의 시는 여자들에게 살과 피를 주고, 잃어버린 욕망을 되찾아준다. , 서정을 주제로 하여 불교 미학의 순수성을 우리말로 표현하여 보다 애송적(愛誦的)인 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집으로 첫 시집인 꽃숨(1965) 이후 문정희 시집(1973), 새떼(1975),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찔레(1987),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1988),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주세요(1990),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1992), 남자를 위하여(1996)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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