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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을비 / 도종환

by 혜강(惠江) 2020. 5. 15.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 시집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바라보고 거닐었던 숲을 비 내리는 가을에 혼자 거닐며, 사랑했던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살이에서 느껴지는 삶의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으며, 존경형 어미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정과 쓸쓸함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는 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바라보던 숲에 가을비를 맞아 낙엽이 지는 것을 바라본다. ‘가을비낙엽은 하강(下降)과 소멸(消滅), 죽음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어이다. 따라서 이것은 화자가 사랑하던 대상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임을 나타낸다.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던 화자는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불 것이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바람은 화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자연물로서, 이 자리에는 쓸쓸함과 허무함의 바람만이 불어올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4연에 와서 화자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 가겠지요.’라며, 화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보편적 감정으로 확대시켜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모든 일이 나 자신만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사(人間事)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이 시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는데, '어제 사랑하던 자리'는 과거를(1),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은 현재를(2), 그리고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은 미래를(3) 각각 의미한다. 또한, 1~3연에서는 시적 화자 개인의 정서와 삶이 투영되어 있다면 4연에서는 '많은 사람들' 역시 그렇게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산다는 인식, 즉 보편적 인간사임을 제시한다.

 

 이처럼, 사랑하다 헤어져 그리워하는 것이 마치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 삶의 모습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시 전반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삶에 대한 절망적 정서라기보다 관조적인 자세의 표현이라는 타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작자 도종환(都鐘煥, 1954~ )

 

 

 시인.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에게 바친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며, 감성의 시인으로 이별과 사랑을 소재로 한 서정성이 풍부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 그리고 부드러운 직선(1998), 슬픔의 뿌리(2002), 해인으로 가는 길(2006)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그밖의 저서로는 산문집 모과(2000),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2004),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2000) 등이 있다.

 

 도종환 시인은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왔는데, 1989년에 전교조(전국교직원노조) 활동으로 인해 교직에서 해직되고 투옥되었고해직 후 10년 만인 1998년에 복직되었다. 그후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났다가 2012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9·20·21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해설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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