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담쟁이 / 도종환

by 혜강(惠江) 2020. 5. 14.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담쟁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절망적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이 고난과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 내고 만다는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힘겨운 상황 앞에서 좌절했던 화자는 우리담쟁이의 모습을 대비하여 시상을 전개하여 부정적인 현실의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이 전교조 활동으로 교사에서 해직되고 언제 끝날지 모를 투쟁을 계속하던 시절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어떻게 맞서 이겨내는지를 말해준다.

 

 화자는 '담쟁이'가 벽을 넘어가는 과정을 유사한 통사구조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담쟁이가 담벼락을 타고 무성히 번져 결국 담을 넘는 모습을 통해 부정적 현실의 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단호한 어조를 시용하여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핵심 시어는 물론 담쟁이이다. 그런데 담쟁이의 극복 대상은 이다. 1연에서, 현실의 장애물 앞에서 우리가 좌절하고 있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절대적 한계처럼 인식되는 을 오르는 행위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2연에서는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매우 절박한 현실 속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절망의 벽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은 좌절을 모르는 투사의 모습과 닮았다.

 

 3연에서는 사상의 전개에 따라 말없이에서 서두르지 않고를 지나 한 뼘으로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절망을 극복하는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중의 단합된 모습을 통하여 이루어 간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극복의 의지는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라고 하여, ‘푸르게로 상징되는 완전한 성취(절망의 극복)를 이루기까지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중간에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끈질기게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4연에서는 우리모두가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즉 포기하고 좌절해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고 노래한다. 결국, 담쟁이는 어쩔 수 없는 벽’(1), ‘절망의 벽’(2), ‘넘을 수 없는 벽’(4)을 넘은 것이다. 그것도 수천 개의 담쟁이 잎과 더불어 말이다.

 

 이 시는 벽을 보고는 시도하지도 않고 넘을 수 없다고 포기하는 인간과 달리 담쟁이는 도전하고 결국에는 여럿이 함께 벽을 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으로 상징되는 절망 앞에 포기하지 말고 단합된 모습으로 도전하여 끝내 이루어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실제로, 이 시는 2009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내 인생에서 꼭 간직하고 싶은 시는 무엇인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IMF 구제금융 이후부터 이 시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 시가 절망의 시기에 위안과 용기, 그리고 도전을 일깨워주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자 도종환(都鐘煥, 1954~ )

 

 

 시인.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에게 바친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며, 감성의 시인으로 이별과 사랑을 소재로 한 서정성이 풍부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 그리고 부드러운 직선(1998), 슬픔의 뿌리(2002), 해인으로 가는 길(2006)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그밖의 저서로는 산문집 모과(2000),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2004),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2000) 등이 있다.

 

 도종환 시인은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왔는데, 1989년에 전교조(전국교직원노조) 활동으로 인해 교직에서 해직되어 투옥되었고해직 후 10년 만인 1998년에 복직되었다. 그후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났다가 2012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9·20·21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녀에게 / 문병란  (0) 2020.05.15
가을비 / 도종환  (0) 2020.05.15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0) 2020.05.14
세한도(歲寒圖) / 도종환  (0) 2020.05.14
못 위의 잠 / 나희덕  (0) 2020.05.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