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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못 위의 잠 / 나희덕

by 혜강(惠江) 2020. 5. 14.

 

 

 

 

 

 

못 위의 잠

 

 

-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체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 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못 위에서 잠든 제비의 모습에서, 화자는 과거 실업 상태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초라한 삶을 회상하면서 연민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는 아비 제비아버지라는 대상 간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집이 작아 못 한 개 위에서 위태롭게 잠을 자는 아비 제비와 실직을 하고 어렵게 가족들을 돌보며 고달프게 살아가는 아버지는 동일시 되고 있으므로, 서로 연관 지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연구분 없이 시상이 전개되는 이 시는, 먼저 못 위에 잠든 아비 제비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점(1~8)에서 실업으로 힘겨워했던 과거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한(9~29)한 뒤, 제비와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현재의 모습(26~27)을 차분한 어조로 시적 정황에 대한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

 

 시의 화자는 지붕 아래, 작은 제비집을 발견한다. 그 비좁은 제비집에는 갓 태어난 새끼들이 가득 차 있고, 어미가 둥지를 날개로 덮고 있다. 그런데 그 제비집 옆에 누군가 박아 놓은 못 하나를 발견한다. 화자는 그 못을 바라보며 그 못 위에서 밤새 위태롭게 잠을 아비 제비를 생각하며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본다. 여기서 못 위에서 잠든 아비 제비의 모습은 아버지와 동일시된 대상이다.

 

 ‘아비 제비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화자는 실업자로 살았던 아버지의 과거의 삶을 회상한다. 아버지는 종암동의 흙바람이 부는 언덕배기 집에서 다섯 식구를 이끄는 가장이었다. 실직한 화자의 아버지는 날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돈벌이 나간 아내의 귀가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마중을 나간다. 화자는, 그 아버지가 피곤함에 지쳐 돌아오는 창백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을 느끼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라고 진술한다.

 

 화자는 이어서 아버지의 삶을 드러낸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쉬게 깨어지지 않고는 오랜 실업 상황에 놓여 있는 아버지를 처지를 표현한 것이며,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버지아비 제비와 비슷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집 한 채못 하나는 의미상 반대되는 개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희미한 달빛을 받아 식구들의 손 잡은 그림자에서 보듯, 서로 위로하며 가족 간의 애정을 키울 수 있었지만, 궁핍하고 가난한 삶 때문에 아버지는 한 걸음 늦게따라가야 할 만큼 가족 앞에 당당하지 못했다. 이처럼, 화자는 그때의 꾸벅거리던 아버지의 모습과 현실의 아비 제비의 모습에서 유사성을 느끼곤, 이를 연관을 지어 한 편의 시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는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시어를 통해 객관적으로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창백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달빛을 창백하게 느끼는 점이나, 아버지가 지녔을 미안한 마음을 쉽사리 식구들에게 다가가지 못 하는 행동을 통해 나타낸 것,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의 삶을 '못 위의 잠'으로 표현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작자 나희덕(羅喜德, 1966~ )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고 생명의 원리를 추구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파일명 서정시(201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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