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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푸른 밤 / 나희덕

by 혜강(惠江) 2020. 5. 13.


<출처 : 다음카페 '문학광장'>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수록

 

 

시어 풀이

*응시(凝視) :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뚫어지게 봄.

*에움길 : 굽은 길. 에워서 돌아가는 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랑하는 대상인 ''를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사랑을 찾아 이 또 하나의 을 찾아가는 밤, 화자는 고백의 형식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별, 꽃들, 두레박 등은 대상에 대한 화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어로 대상에 대한 사랑의 정서를 강조하는 것들이다.

 

 1연에서 시적 화자인 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지만, 그 무수한 길은 결국 네게로 향한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2연에서는 와 헤어져 외로울 때에도 내 응시에 알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곧 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3연에서 나는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이라는 표현으로, ‘를 사랑하면서 수없이 감정의 변화를 겪었음을 고백한다. 여기서 두레박은 사랑을 퍼 나는 화자의 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를 향한 화자의 사랑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뼈 아픔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4연에서 와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은 수만 갈래의 길이고, ‘은하수의 한 별인 내가 또 하나의 별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이기도 한 것인데, 5연에 와서 나으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자신이 걷고 있는 모든 길이 결국은 를 향한 것이었다고 다시금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에움길에워서 돌아가는 길이란 뜻으로, 사랑의 열정은 쉽고 순탄한 지름길보다는 여러 과정을 거치며 고비를 겪고 나서 얻게 될 때, 그 진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을 담아낸 시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형상화함으로써, 이 시를 읽는 이들은 마음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며, 심미적·정서적 가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작자 나희덕(羅喜德, 1966~ )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고 생명의 원리를 추구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파일명 서정시(2018)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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