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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 나희덕

by 혜강(惠江) 2020. 5. 12.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 나희덕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
누구를 벨 수도 없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칼날을 베고 잠들던 날
탱자꽃 피어 있던 고향 집이 꿈에 보였다
내가 칼날을 키우는 동안
탱자나무는 가시들을 무성하게 키웠다
그러나 꽃도 함께 피워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가 환했다

 

꽃들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 가는 나는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

 

침을 발라 탱자 가시를 손에도 붙이고
코에도 붙이고 놀던 어린 시절
바람이 와서 탱자 가시를 가져가고 살을 가져가고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나는 탱자 꽃잎보다도 얇아졌다
누구를 벨지도 모르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수록

 

 

이해와 감상

 

 

 나희덕의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의 시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칼날만 키우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반성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인 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자연물인 탱자나무와 대비하여 탱자나무가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는 달리, 탱자 꽃잎보다도 얇다고 여기며, 지킬 것 없이 칼날만 키우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반성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1연과 5연이 변용된 수미 상관 구조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5연에는 화자의 반성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고 진술한다. ‘얇아졌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마음의 상처는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고 하여, 상처가 심화되어 여러 개의 얇은 조각으로 얇게 베어내며 칼로 도려내듯이 쓰리고 아프게 한다. 그래서 누구를 벨 수 없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칼날자라고 있는 주체는 이므로 화자 자신을 향한 칼날임을 알게 한다.

 

 2연에서 화자는 칼날을 품고 자던 어느 날, 꿈속에서 고향집의 탱자나무 꽃이 피어 있는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탱자나무는 내가 칼날을 키우는 동안’ ‘을 지키기 위해 가시들을 무성하게키워 꽃도 함께 피워탱자나무 울타리가 환하게 보였다. 화자는 꿈을 꾸게 함으로써 유년 시절의 경험을 꿈으로 설정하여 화자와 탱자나무를 대비시켜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가시를 무성하게 하는 행위는 을 지키기 위한 가치 있는 일이며, ‘함께하는 노력을 통해 결국, ‘을 피워 환한 울타리라는 가치 있는 일을 해낸 것이다.

 

 3연에서 화자는 탱자나누는 달리 지킬 것이 없이,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인다며, 마음만 베이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런데 여기서 화자는 새로운 깨갈음을 얻는다. ’땡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함께 노력하며 애쓰는 조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4연에서는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모습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 꿈속에서 본 고향집의 탱자나무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마지막 5연은 1연을 변용한 수미 상관의 구성으로,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난 칼날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가 될 정도로 자라고 있다는 반성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나희덕(羅喜德, 1966~ )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고 생명의 원리를 추구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파일명 서정시(201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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