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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직녀에게 / 문병란

by 혜강(惠江) 2020. 5. 15.

 

 

<출처 : 다음 블로그 '아름다운 곳에'>

 

 

직녀에게
 

 

-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고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시집 죽순 밭에서(1977)

 

시어 풀이

 

*오작교(烏鵲橋) : 칠월 칠석날 저녁에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銀河)에 놓는다는 다리. 은하 작교.

*노둣돌 : 말에 오르거나 내릴 때 발돋움에 쓰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하마석(下馬石).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견우직녀 설화를 차용하여, 비극적인 이별의 현실 속에서 화자가 처한 이별의 상황을 극복하고 대상과 재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화자인 를 견우로 설정하여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동일 어구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단정적인 어투와 비장한 어조로 호소력 있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사랑하는 연인인 견우와 직녀가 상대방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견우직녀 설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1~11행까지 전반부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처한 이별 상황의 고통과 아픔을, ‘너무 길다라는 시구의 반복을 통해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은하수는 두 사람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너무 길다라는 화자가 처한 부정적 현실의 시간을 드러내는 것으로, 뒤에 나오는 ‘~야 한다라는 그에 대한 극복의 당위성을 드러낸다. 화자는 만남의 매개체인 오작교마저 끊어졌다며 노둣길을 놓아, 면도날 위를 걷는 듯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화자는 직녀가 그리움을 수놓아 여러 필의 베를 짜고, 견우는 암소를 키워 여러 차례 새끼를 낳도록 이별의 세월이 너무 길었음을 제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 야 한다를 거듭 반복함으로써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별의 아픔을 토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가혹한 운명을 거부하고 이별한 대상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므로,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만나야 하며,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슬픔을 끝내야 한다는 것은 현재의 이별 상태를 극복하고 그대와 재회하겠다는 화자의 강한 의지를 비장한 어조로 호소하는 것이다.

 

 이 시는 연인 사이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그 극복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상황으로 확대해 보면 남한과 북한으로 볼 수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견우와 직녀가 다시 만나기를 애타게 바라는 것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통일 염원의 시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를 지은 문병란 시인은 이 시에 자신의 통일 염원 의지를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민중 가요로서 통일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작자 문병란(文丙蘭, 1935~2015)

 

 시인. 전남 화순 출생. 1963현대문학에 시 <가로수>, <꽃밭>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그는 문학인으로서의 진정성을 매우 강조하였고, 문학세계도 이 기본 신념을 펼쳐야 하며, 반인간적인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진실과 역사 앞에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은 처음에도 인간, 최후에도 인간이 주제임을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시집으로 1970년대 이후 죽순 밭에서을 시작으로 벼들의 속삭임(1978), 5월의 연가(1986), 땅의 연가(1981), 뻘밭(1983), 무등산(1986), 견우와 직녀(1991), 새벽의 차이코프스키(1997), 인연서설(1999),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2001), 동소산의 머슴새(2004) 등의 시집을 발표하였다. 마지막으로 발간한 시선집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2015)에서 시의 아름다움이란 진실함 속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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