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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씨 / 문병란

by 혜강(惠江) 2020. 5. 15.

 

 

 

 

 

꽃씨

 

 

- 문병란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여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 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묻는다.

 

 

     - 문병란시집(1970)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결실의 계절 가을에 받아 든 꽃씨를 보며, 내적 성숙에의 염원과 지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생명의 계절인 여름을 지나 결실의 계절 가을에 이룬 성숙을 꽃씨에 함축하여 표현하고. ‘성숙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촉각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1~2연에서, 빈손에 받아 든 꽃씨속에 내밀하게 담긴 가을을 본다. 여기서 은 빛나는 여름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데, 그러한 아름다움이 사라진 이후에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가을이 응집된 것을 인식한다.

 

 그러기에 화자는 3연에서 꽃씨 한 알속에 여름의 핏빛 꽃들의 몸부림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진다고 느끼고 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서 한 송이 국화꼬치이 피기까지, 봄의 소쩍새와 여름의 천둥의 울음그리고 무서리 겪고 태어난 것을 연상하게 한다. 시각적 이미지와 촉각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3연에서는 꽃씨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도 꽃씨처럼 여무는데, 이러한 상태가 외로움으로 표현되어 있다. ‘빛나는 외로움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찬란한 아름다움이 사라진 가을날 화자는 비록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이러한 감정마저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빛나는 외로움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가을의 꽃씨속에서 봄, 여름을 거쳐 온 화려했던 과가의 삶을 되새기고 있다.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이 시는 꽃씨의 내적 성숙에서 자신의 성숙을 염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작자 문병란(文丙蘭, 1935~2015)

 

 

 시인. 전남 화순 출생. 1963현대문학에 시 <가로수>, <꽃밭>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그는 문학인으로서의 진정성을 매우 강조하였고, 문학세계도 이 기본 신념을 펼쳐야 하며, 반인간적인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진실과 역사 앞에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은 처음에도 인간, 최후에도 인간이 주제임을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첫 시집 문병란시집(1970) 이후, 죽순 밭에서(1977), 벼들의 속삭임(1978), 5월의 연가(1986), 땅의 연가(1981), 뻘밭(1983), 무등산(1986), 견우와 직녀(1991), 새벽의 차이코프스키(1997), 인연서설(1999),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2001), 동소산의 머슴새(2004) 등의 시집을 발표하였다. 마지막으로 발간한 시선집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2015)에서 시의 아름다움이란 진실함 속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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