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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는 일 / 나태주

by 혜강(惠江) 2020. 5. 8.





사는 일

 

- 나태주

1.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2.
세상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시간이나  시간 

퇴근 버스를 놓친  아예 
다음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 버리고 
길바닥에 나를 놓아 버리기로 한다 

누가 나를 주워가 줄 것인가 
만약 주워가 준다면 얼마나 내가 
나의 길을 줄였을  
주워가 줄 것인가 

 시간이나  시간 
시험 삼아 나는 세상 한복판에 
나를 던져 보기로 한다 

나는 달리는 차들이 피해 가는 
길바닥의 작은 돌멩이.


         - 출전 창작과 비평(1998)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시련도 가치 있게 여기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삶과 현실에 대한 여유롭고 긍정적인 자세를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세태에 대한 반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1.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을 길을 걷는 여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길을 걷다 보면 굽은 길도 있고 곧은 길도 있는 것처럼, 삶에도 힘든 일도 있고 수월한 일도 있음을 인식하면서 직면하는 상황을 여유롭게 수용한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시련과 고난에 힘겨울 때도 있지만, 화자는 생각지 못하게 돌아가는 길에서 바람’, ‘멍석딸기’, ‘물총새’, ‘쪽빛 날갯짓등 아름다운 자연과 만나듯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기도 한다. 화자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더 많이 깨달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화자는 다시 한번 삶에 대해 여유롭고 긍정적인 태도를 강조해 본다.


 하지만 일상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2.에서 화자는 퇴근 버스를 놓치고 걸어가면서 누가 나를 주워가 줄 것인가라고 묻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길바닥의 작은 돌멩이로 내 던져진 것을 느낀다. 결국, 화자는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세태에 대해 쓸쓸함을 느낀다.


 이 시는 길을 걷는 여정에 빗대어 삶의 모습과 성찰한 내용을 형상화하였다. , 살아가면서 두 가지 시각에서 자신의 일탈 경험을 성찰하며 일상에서 만나는 뜻밖의 아름다움에 놀라기도 하고, 또 무관심한 세태에 대해 실망하기도 한다. 화자는 이처럼, 화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을 서사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고백체 문체를 사용하여 화자의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작자 나태주(羅泰柱, 1945 ~ )

 

 시인. 충남 서천 출생. 1971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력과 사색, 천진하고 참신한 착상,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풀꽃'이 있다.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1973), 막동리 소묘(1980), 너도 그렇다(2013), 꽃을 보듯 너를 본다(2015), 기죽지 말고 살아 봐(2017),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2017),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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