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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월(四月) / 김현승

by 혜강(惠江) 2020. 5. 7.

 

 

 

 

 

사월(四月)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尖塔)*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 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들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  시집   옹호자의 노래(1963) 수록

 

 

시어 풀이

 

 

*첨탑(尖塔) : 지붕 꼭대기가 뾰족한 탑. 뾰족탑.

*파종(播種) : 논밭에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일. 씨뿌리기.

*연돌(煙突) : 굴뚝. 불이 따라 들어가거나 지나는 길.

*해동(解凍) : 얼었던 것이 녹아서 풀림.

*미신(迷信) : 종교적·과학적으로 망령되다고 생각되는 믿음(·굿 따위).

 

 

이해와 감상

 

 

 ‘사월은 겨울과 봄의 속성을 절반씩 가지고 있는 달로이 시는 사월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봄의 도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사월을 맞아 현재의 상황은 부정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는 긍적적인 태도로, 곧 희망찬 봄이 올 것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사월이 지니고 있는 겨울의 속성과 봄의 속성을 대비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깊은 상처', '낡고 허연 붕대', ‘의혹의 안개’, '검은 연돌' 등은 겨울이 주는 시련과 고난의 이미지이며, ‘플라타너스의 순’, '예언의 종', '파종의 시간', '황금의 빛', '유순한 남풍', ‘어린 수선’, ‘해동의 기적 등은 밝고 건강한 봄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이미지 등 대조적 이미지를 대비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2연에서 사월은 의인화 기법을 통해, 도시는 지금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파종의 시간을 알려주고, ‘골짜기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 버린 지 오래라며 겨울의 흔적을 스스로 지우고 생명력의 실현을 위한 준비와 봄이 오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월의 모습을 목격한 화자는 3연에서 사월은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며, 황금빛과 안개의 흰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봄의 생명력을 부각하여 긍정적 미래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고 있다.

 

  4연에 와서,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화자는 청유형으로 표현하여 봄이 주는 생명력을 분출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보여주자고 권면한다. 겨울에 속하는 검은 굴뚝은 떼어 창고 속에 넣고, 따뜻한 봄바람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고 한다. 지금쯤 땅 밑에선 개구리의 숨통도 불룩거릴 것이므로. 생명력의 분출에 대한 기대감을 노래한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인 사월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의 달……이라며 시상을 마무리한다. 사월을 미신의 달이라 한 것은 알 수 없는 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리고 명사형 종결과 말줄임표를 사용해 시상을 마무리한 것은 봄의 도래에 대한 시적 여운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김현승의 '사월'은 겨울과 봄의 속성을 절반씩 가지고 있는 사월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통해 봄과 겨울 이미지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겨울의 부정적인 모습 청산과 생명력 가득한 봄의 도래에 대한 화자의 강한 소망과 확신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작자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인. 평양 출생. 호는 다형(茶兄), 1934년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양주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어 1934동아일보에 암울한 일제시대 속에서도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새벽·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등을 발표했다.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시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생에 대한 종교적인 사색과 현대인의 삶의 고독을 주로 노래했다. 1957년 첫 시집 김현승시초(詩抄)를 펴낸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 고독(1970), 김현승 시전집(1974) 등을 펴냈다. 유고시집으로 마지막 지상에서(1975)가 있다. 기타 저서로 한국 현대시 해설(197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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