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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강우(降雨) / 김춘수

by 혜강(惠江) 2020. 5. 7.

 

 

 

 

 

강우(降雨)

 

- 김춘수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 시집 거울 속의 천사(2001) 수록

 

 

시어 풀이

 

*넙치지지미 : 넙치를 밀가루에 묻혀서 기름에 튀긴 음식.
*담괴 : ()이 살가죽 속에 뭉쳐서 생긴 멍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아내의 죽음에서 비롯된 화자의 허전함과 슬픈 감정을 애절하게 노래한 시로,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장면을 통해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절망감, 체념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아내와의 사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을 애절하게 노래한 작품으로, 특히,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풍경을 제시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내를 찾는 화자의 모습을 독백조로 나타내어 애상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풍경을 제시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내를 찾는 화자의 모습을 독백조로 나타내어 애상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화자는 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하고, 감각적 이미지를를 통하여 화자의 고조된 정서를 드러내고 있으며, 반복적 표현으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라고 아내를 찾는다. ‘넙치지지미구운 생선 냄새가 나는 식탁에서 아내를 찾지만 아내의 대답은 없고, 자신의 목소리만 메아리가 되어되돌아오자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아내가 곁에 있던 때 그랬던 것처럼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다름을 인식한다. 이처럼 어디로 갔나, 누웠나, 도졌나와 같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반복하여 아내의 부재(不在)를 강조하면서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한 뼘 두 뼘 아픔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아 기욱거리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이러한 화자의 심정은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라는 감각적 이미지와 결부되어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속의 처럼 아내의 부재로 인하여 슬픔과 절망감에 빠지고, 결국 화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절망하고 체념하는 태도를 보인다.

 

 화자는 어디로 갔나.’라고 반복하여 사별로 인한 아내의 부재(不在)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라고 좌절과 체념의 정서를 보여준다. 이라한 화자의 정서는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라는 감각적 이미지와 결부되어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는 시집 거울 속의 천사(2001)”에 담겨 있는데, 시인은 시집의 말미에 수록된 후기에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내가 내 곁을 떠난 지 꼭 2년이 됐다. 그동안 아내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알게 해 줬다.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 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런 것들을. 중략이 시집에 실린 여든아홉 편의 시들 모두에 아내의 입김이 스며 있다. 나는 그것을 여실히 느낀다. 느낌은 진실이다. 내 나이 올해 여든이다. 이런 나이에 이만큼 많은 시를 단시일(2)에 쓸 수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내가 그렇게 이끌어 준 것 같다.”고 말이다. 곧 아내의 죽음이 얼마나 애절했으면, 89편이나 되는 시를 낳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작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언어와 대상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고투했던 시인이자 시 이론가였다. 그가 제시한 무의미시는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시문학사에 깊게 각인돼 있다. 특히 존재의 탐구, 대상의 즉물적 제시, 현실의 실감을 허무의지로 승화시켰던 점에서 당대는 물론 한국 문학 미래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구름과 장미>, <>, <>, <>, <꽃을 위한 서시>. <꽃의 소묘>, <타령조·기타>, <남천>, <처용단장>, <들림>, <쉰 편의 비가>, <달개비꽃> 외 다수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인인(隣人)(1953),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1969), 처용(1974), 남천(南天)(1977), 처용단장(1991), 거울 속의 천사(2001), 쉰한 편의 비가(2002) 등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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