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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by 혜강(惠江) 2020. 5. 6.


<사진 : 이중섭이 일본의 아내에게 보내 편지>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리니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 시집 남천(南天)(1977)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 김춘수(19222004)가 남긴 8편의 <이중섭> 연작시의 하나로,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이중섭의 애타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의 대상인 이준섭의 아내는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사랑했던 일본인 여자 후배로, 1945년 이중섭은 천신만고를 겪으며 원산까지 찾아온 그녀와 결혼한다. 그 후 행복한 생활을 하던 이들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가 모진 고생을 한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고생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병고에 시달리게 되자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자신은 부산으로 나와 작품 활동을 한다. 이 시는 이 무렵의 이중섭이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을 회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1~5행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는 것은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바다보다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에서 바다의 푸른색 이미지는 아내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중섭의 설레는 마음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6~8행의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는 기다리던 아내가 오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9행 이하는 아내와 만날 수 없는 이중섭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있는 것은 동경에서 오는 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정서가,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에서 진한 어둠에는 아내의 부재로 인한 이중섭의 슬픈 내면이,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우는 행위에는 아내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버리며 슬픔을 삭이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런 행위 속에는 이중섭의 사랑하는 아내와 만날 수 없는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인 시인은 담담하게 관찰하듯이 표현하면서도 회화적 이미지를 통해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도치법을 이용하여 인물의 정서 강조하고, 또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시적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아내를 그리워하는 이중섭의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

 

 참고로 김춘수 시인이 <李仲燮> 연작시에 대하여 언급한 말을 소개한다.  나의 연작시 <이중섭>은 이중섭의 그림 몇 폭을 염두에 두고 씌여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그의 전기적인 일면과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이 어우러져 있다. 나는 그를 예술가로서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희귀한 자질의 인간으로서 보았다. 지리학적 속도와 변동의 시대에 있어서 그와 같은 인물을 하나의 기적일 수도 있다. 개체로서 그는 그렇게 시달리고 버림당했는데도 그가 원천적으로 잃은 것은 한 개도 없다. 그는 退化된 그대로 문명의 생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문명인인 나에게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이중섭> 연작시는 내가 추구하고 있는 지점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있다.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에 그런 희생을 나로서는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李仲燮> 連作詩에 대하여(김춘수 <해설 : 시인 남상학>

 

   

작중 인물 : 이중섭 (1916~1956)

 

 서양화가, 평남 평원 출생. 호는 대향(大鄕).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로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을 지녔던 그는 감정이 실린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 날카로운 선묘로 이루어진 독특한 조형 세계를 그려냈으며, 특히 서양 어법으로 향토의 숨결과 희망을 담아냄으로써 한국미술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작품으로는 흰 소, 투계, 닭과 가족,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등이 있다

 

 

작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언어와 대상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고투했던 시인이자 시 이론가였다. 그가 제시한 무의미시는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시문학사에 깊게 각인돼 있다. 특히 존재의 탐구, 대상의 즉물적 제시, 현실의 실감을 허무의지로 승화시켰던 점에서 당대는 물론 한국 문학 미래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구름과 장미>, <>, <>, <>, <꽃을 위한 서시>. <꽃의 소묘>, <타령조·기타>,  <남천>, <처용단장>, <들림>, <쉰 편의 비가>, <달개비꽃> 외 다수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인인(隣人)(1953),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1969), 처용(1974), 남천(南天)(1977), 처용단장(1991), 거울 속의 천사(2001), 쉰한 편의 비가(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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