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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by 혜강(惠江) 2020. 4. 12.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시집 이 시대의 아벨(198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상처받은 내면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이미지로 표현하여 내면의 고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 내적 고통과 맞대면하여 고통을 수용하고 견뎌냄으로써 더욱 견고해지는 내적 성숙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이를 회피하지 않고, 고통을 직접 대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고통 극복에 대한 의지를 청유형과 설의적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 의미가 유사한 구절을 반복하여 리듬을 살리고 시상을 부드럽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 시는 상처받은 내면의 고통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내면에 지극한 상처를 드리우고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을 노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1연에서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거리니’ ‘넉넉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고 한다. 여기서 상한 갈대는 현실에서 상처 입고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로서 상한 영혼과 동일시된다.

 

 이어 2연에서는 고통에 맞서 현실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나,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고 한다. ‘부평초는 흔들리는 존재로서 현실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로서 앞의 상한 갈대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부평초 잎은 아무리 흔들려도 시련을 견뎌 내기 위한 전제 조건인 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있으므로 걱정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므로 지는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3연에서는 고통을 극복하고 강한 의지로 현실에 대응하고자 하는 태도를 표현하고 있다.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고한다. 여기서 뿌리 깊은 벌판은 고통을 극복하고 더욱 견고해진 모습을 상징하며, 상처 입은 영혼이 고통을 수용하고 설움을 극복함으로써 도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곳은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삶에서의 고통은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영원한 눈물’, ‘영원한 비탄은 없는 곳이다. 왜냐 하면, ‘캄캄한 밤이라도 고통을 함께 이겨 낼 수 있는 동반자인 마주 잡을 손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면 마주 잡아줄 손은 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이 시에서 화자는 현실을 '캄캄한 밤', 즉 암울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마주 잡을 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화자를 암울한 현실로부터 구원하고 밝은 세상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동반자에 대한 믿음과 구원의 희망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작자 고정희(高靜熙, 1948~1991)

 

 

 전남 해남 출생. 본명 고성애. 1975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1983년 대한민국 시인상 수상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등의 시를 통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함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전통적인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로하는 장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는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1989) 여성해방출사표(1990), 광주의 눈물비(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0) 등이 있다.

 

 자신의 시의 모체가 되어온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으로 사망했다. 유고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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