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by 혜강(惠江) 2020. 4. 12.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샛노란 꽃을 밀어올리다니

 

네 오롯한 호흡 앞에서

이젠 나도 모르게 환해진다

 

거기 문득 네가 있음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시집 앞 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1997)

 

 

시어 풀이

 

하르르 : 얇고 성기며 풀기가 없어 매우 보드라운 모양.

오롯한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엄정(嚴正) : 1.엄격하고 바름. 2. 날카롭고 공정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작품은 수선화를 의인화하여 수선화가 피어나는 순간을 통해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과 숭고함을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소재인 수선화는 아스파라거스 목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재배된다. 약간 습한 땅에서 잘 자라며, 땅속줄기는 검은색으로 양파처럼 둥글고 잎은 선형으로 자란다. 꽃은 12~3월경에 꽃줄기 끝에 희고 노란 꽃이 6개 정도 아름답게 피어난다. 꽃말은 '자존(自尊)'으로, 문학의 소재나 음악의 소재로도 많이 애용된다.

 

 이 시는 수선화라는 자연물에서 느낀 감정을 의지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정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시각적 심상과 촉각적 심상을 균형적으로 사용하여 수선화가 가지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수선화'가 막 피어나고 있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1연과 2연에서는 수선화가 피는 뜨락의 모습을 긴장감 어린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맵고 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는 개화 직전의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3연에서는 꽃이 피는 순간에 목도할 수 있는 강인한 자연의 힘을 그려낸다. 얇고 가느다란 줄기를 가졌지만 온 힘을 다해 꽃을 밀어 올리는 수선화의 생명력을 영탄법으로 경탄한다. 이 부분에서 시적 화자의 감정이 가장 고양된다. 4연에서는 개화로 인한 생명력의 발산을 보며 세상이 정화됨을 느낀다.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자태로 핀 수선화의 자태를 바라보는 화자는 세상이 엄숙하고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고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5연에서는 수선화를 보며 정신적 고양(高揚)을 다짐한다. , 수선화로부터 받은 서늘한 기운에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고 스스로의 삶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처럼 이 작품은 자연물인 수선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키고, 화자는 수선화가 핀 자리를 보며 세상의 시간이 엄정해 지고 있음을 느끼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을 다지고, 더 높은 인격을 위해 스스로를 고양하겠다고 다짐한다.

 

 

 

작자 고재종(高在鍾, 1957 ~ )

 

 

 

 시인. 전남 담양 출생. 1984실천문학신작 시집 시여 무기여동구 밖 집 열 두 식구>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는 농촌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해왔는데, 1980년대 이후 대표적인 농촌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인간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은 자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를 바탕으로 농촌 생활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동시에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대변하는 시들도 다수 창작한다. <수선화, 그 환한 자리>가 수록된 시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역시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농촌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1987), 새벽 들(1989), 쌀밥의 힘(1991), 사람의 등불(1992), 날랜 사랑(1995),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1996),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1997),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2001). 쪽빛 문장(2004)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