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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첫사랑 / 고재종

by 혜강(惠江) 2020. 4. 11.

 

 

 

 

 

첫사랑

 

 

-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恍惚)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 출전 시집 쪽빛 문장(2004)

 

 

 

시어 풀이

 

 

난분분(亂紛紛) : ‘난분분하다의 어근. 눈이나 꽃잎 따위가 흩날리어 어지러운.
: 불이나 뜨거운 기운으로 살이 상한.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겨울에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는 풍경을 소재로 아름다운 눈꽃을 피워내듯, 시련과 고난 그리고 헌신으로 피워낸 아름다운 첫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자연의 순환에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한겨울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고, 그 나뭇가지에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는 자연 현상에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모두 4연으로 된 시는 구성으로 볼 때, 1연에서는 눈꽃을 피우기 위한 눈의 도전, 2연에서는 눈꽃을 피우기 위한 눈의 시련, 3연에서는 마침내 피워 낸 눈꽃에 대한 예찬, 마지막 4연에서는 눈꽃이 진 후 봄에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을 각기 노래하고 있다또한  ‘싸그락 싸그락’, '난분분 난분분' 등의 의성어와 의태어의 반복으로 운율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남몰래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눈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의인법, 살의법, 반복법,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에서 눈은 나뭇가지에 눈꽃을 피우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의인법과 설의법으로 표현되었다. 2연에서는 눈이 눈꽃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난분분 난분분춤을 추기도 하고, 주위를 맴돌며 미끄러지길 수백 번하는 시련의 과정이 나타난다. 싸그락 싸그락’은 눈이 내려쌓이는 소리를 훙내낸 의성어며, 난분분은 의태어로 눈이 어지럽게 날리는 모양을 나타낸다.

 

 3연에서는 바람 한 점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햇솜 같은순수한 마음을 다 퍼 준 후 마침내 눈꽃이라는 결실을 맺는데 그 모습을 황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황홀은 눈이 피워내고자 했던 꽃으로 눈꽃을 의미하며, 이것은 눈과 나뭇가지의 첫사랑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첫사랑은 사랑에 서툴기 때문에 이루기가 쉽지 않지만, 마침내 그 사랑을 이루었을 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큰 황홀감을 만끽할 수 있다.

 

 4연에서는 나뭇가지를 향한 눈의 사랑은 봄이 오면서 끝나게 되고 눈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지만, 나뭇가지는 그 마음을 기억하고, 눈꽃을 맺었던 그 자리에 꽃을 피워낸다. 눈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나뭇가지는 보다 성숙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덴 자리는 눈꽃이 내리던 자리로서 황홀하지만 짧은 만남의 자리를 의미하며, 동시에 세싹이 나기 위한 시련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을 피워내는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다.

 

 이 시는 결국, ‘눈꽃의 모습을 통해 첫사랑을 표현한 것으로, 나뭇가지가 꽃을 피우듯 사람도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 고재종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그의 삶 속에서 마치 이웃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같이 생명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함께 사는 과정을 통하여 생명 앞에서 그것에 환호하고 전율을 느끼는 사람이며, 나아가 생명이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 생명을 보살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한 생명의 관조자가 아니라 생명의 성장에 참여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작자 고재종(高在鍾, 1957 ~ )

 

 

 시인. 전남 담양 출생. 1984실천문학신작 시집 시여 무기여동구 밖 집 열 두 식구>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지금까지 주로 농촌의 풍경과 삶을 배경으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담은 작품을 발표했다. 절제된 언어 표현과 토속어 구사, 음악성을 특성으로 하는 시를 주로 창작해 왔다. 16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1987), 새벽 들(1989), 쌀밥의 힘(1991), 사람의 등불(1992), 날랜 사랑(1995),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1996),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1997),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2001). 쪽빛 문장(2004) 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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