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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성묘 / 고은

by 혜강(惠江) 2020. 4. 11.

 

<출처 : 다음카페 '장미의 나날'>

 

성묘

  - 고은  

아버지,남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시대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앞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西道)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이 땅에 남지 않고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북통일이 되면
또 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청청한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소금이여", "소금이여"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 출전 문의 마을에 서서(1974)

 

 이해와 감상

  <성묘>는 시인 고은의 네 번째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974) 에 실린 시로, 평생을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돌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분단된 조국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한편,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강조한 작품이다.

 화자는 아버지 무덤에 성묘하러 가서 통일되지 않은 조국의 현실을 전하며,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않고 한 민족으로 서로의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살던 그 시절의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분단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의 힘겨운 시기를 살았던 아버지를 등장시켜 시적 대상인 아버지의 인생을 조국의 역사와 연결하여 시적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상징적 시어를 통해 통일의 염원을 풀어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대화체를 통해 현장감을 살리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작품은 1행에서 5행까지 조국 분단에 대한 현실을 탄식하고, 6행에서 20행까지 수난을 당해온 조국과 민중의 삶을 회상한다. 그리고 21행에서 25행을 통해 다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드러낸다.

 화자의 아버지는 일본 강점기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소금을 팔았던 소금 장수였다. 이 시에서 아버지가 팔았던 하얀 소금은 단순히 아버지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고통의 시대에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 또한, 아버지가 이 땅의 민중들과 함께 나누었던 삶의 애환과 애정을 의미한다. 화자는 아버지가 넘나든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안에 선지가 생길 따름이라고 한다. 이 시는 분단 현실로 인한 한을 상징하는 선지와 망한 조국에 대한 서러운 마음을 상징하는 압록강의 붉은 물빛의 붉은색과 하얀 소금의 하얀색이 색채 대비를 이루어 분단이라는 상황의 원통함을 부각하고, 시인이 바라는 민족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게 남북을 오가면서 아버지는 서도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한편, 밀양의 아리랑을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남북으로 갈라진 현실에서 아버지와 같은 삶을 불가능해지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셔 그가 팔았던 소금을 통해 추억된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조국 통일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 남북통일이 되면/ 또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소금이여, 소금이여는 반복적 효과를 통한 화자의 소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통일된 그날의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라는 표현으로 조국 통알에 대한 염원을 기원한다.

  이 작품은 과거 소금 장수였던 아버지의 삶을 회상하면서 분단 이전의 민족의 삶을 떠올리고 이러한 삶이 불가능해진 현재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아버지가 팔던 하얀 소금은 아버지의 삶을 추억하게 하는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고은 시인의 후기 시에 속하는 작품에 속하는 이 시는 초기 시들은 허무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탐미적이고 감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민중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불운한 한국 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시기의 작품이다. 그가 격렬한 투쟁의지를 드러내고 거침없이 시대에 대한 비판을 토로한 대표적 시로는 연작시 <만인보>와 장시 <백두산>이 이 시기 고은의 대표작들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민족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분단으로 인해 사라진 민족의 얼과 화합을 위해 고뇌하는 시인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작자 고은(高銀, 1933 ~ )

 시인.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승려 생활. 법명은 일초(一超).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역임. 1958현대시<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문의 마을에 서서(1974), 조국의 별(1984), 만인보(1989)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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