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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머슴 대길이 / 고은

by 혜강(惠江) 2020. 4. 10.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김기주 국어논술'>

 

 

 

머슴 대길이

 

 

-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취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 시집 만인보(萬人譜)1(1986)

 

 

시어 풀이

 

상머슴 : 일을 잘하는 장정 머슴.
홑적삼 : 홑겹으로 된 적삼.
눈요기 :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 어느 정도 만족을 느끼는 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은의 연작 시집 만인보(萬人譜)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인이 실제로 만났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화자는 대길이라는 하층민의 삶을 통해 건강한 민중의 생명력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함을 회상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시의 어조는 마치 시골 사랑방에서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특히 '지요'와 같은 종결형은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화자가 시적 대상을 높이 평가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토속적 시어의 사용으로 향토적 정서를 전달하고, 구체적인 지명을 제시하여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1연은 힘세고 성실하며 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대길이를 묘사하고 있다. 머슴 대길이는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머슴에 걸맞게 힘이 세고,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모르는, 사려 깊고 인내심이 강했다. , ‘이른 아침 동네 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우는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지녔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도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을 가질 정도로 총명하고 의식이 깨어있는 인물로, 화자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인물이었다.

 

 2연에서는 남다른 인격을 지니고 넓은 세상을 동경하는 대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할 만큼 이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뒷산에 올라가면, 크고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먼 데 바다를 바라보는 인물로 화자는 대길이와 함께하기도 했다.

 

 3연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대길이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라는 대길이의 말은 이기적이고 안일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경계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화자에게 말해주며, 화자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으로, 이 시의 주제 의식이 표현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연은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라며 대길이가 시인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준, 인생의 영원한 큰 스승인 밤새우는 영원한 불빛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대길이는 시인에게 함께 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몸소 가르쳐 준 인생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가난하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대길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 시는 대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중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 고은(高銀, 1933 ~ )

 

 

  시인.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승려 생활 법명은 일초(一超).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역임. 1958현대시<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조국의 별(1984), 만인보(1989)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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