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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랑법 / 강은교

by 혜강(惠江) 2020. 4. 10.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시집 그대는 깊디 깊은 강

 

 

▲이해와 감상

  

 

  <사랑법>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내적인 응시를 강조하는 시로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차분하고 서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침묵 속의 응시와 성찰로 일구어가는 삶의 새로운 지평, 혹은 인내와 침묵 속에서 발견하는 큰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반복적인 시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고 있으며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상징적인 시적 주체를 효과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대구의 표현 기법을 구사하여 리듬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명령형의 어조를 통해 엄숙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적 화자가 조언하는 <사랑법>은 이렇다. 1연에서 그가 제시하는 사랑의 방식은, 우선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책임한 방치라기보다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과 아집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한 것은 이별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응시하는 것, 침묵 속에서 관조하는 것이다.

 

 2~3연에서는 사랑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변화들을 ’, ‘하늘’, ‘무덤과 같은 시어들로 상징화하였다. ‘은 아름다움을, ‘하늘은 높고 순수한 사랑의 경지를, ‘무덤은 죽음의 순간까지 유지되는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침묵하라고 한다. 

 

 4연에서 6연까지는 내면을 응시하는 관조적인 태도를 제안한다. 내면에서 이미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꿈을 잃은 것들인 오래 전에 굳은 날개’, ‘흐르지 않는 강물’, ‘누워 있는 구름’, ‘깨지지 않는 별들이 있음을 돌아보고,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타인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실눈으로 볼 것을 당부한다. 이는 집착을 벗어난 상태에서 담담하게, 관조적으로, 또는 기다림으로 사랑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7연에서는 관조와 기다림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설명한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는 표현은 사랑의 초월적 경지, 그 절대적 영역은 먼 곳이 아닌, 매우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이란 삶을 새로운 시각과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성급히 앞으로 나섬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응시, 긴 침묵이 우리에게 큰 하늘을 열어 줄 뿐이다.


  이 시는 침묵을 통해 새로운 인식과 사유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사랑의 방법을 잠언적인 말투를 통해 간결하고 엄격한 절제의 어조를 표현했다. 그리고 침묵을 통한 체념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드러낸다. (시인 남상학)   

 

 

작자 강은교(姜恩喬, 1945 ~ )

 

 

  시인. 함남 흥원 출생. 1968사상계신인 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허무를 주제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점차 생명의 신비와 공동체적 삶으로 관심을 넓혀 갔다. 시집으로 허무집(1971), 소리집(1982), 우리가 물이 되어(1987), 그대는 깊디 깊은 강(1991), 초록 거미의 사랑(2006) 등이 있다.

 

 <사랑법>1991년에 출간된 그대는 깊디 깊은 강에 수록된 시이다. 이 시집에는 소박한 정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참신한 시 세계가 드러나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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