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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by 혜강(惠江) 2020. 4. 8.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 아직 처녀(處女)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출전 우리가 물이 되어(1987)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가정법 형식을 통해 삭막하고 황폐한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가 되는 조화로운 합일과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87년 간행한 시집 우리가 물이 되어의 표제작으로, 강은교의 초기시에서 볼 수 있는 허무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후기의 너그럽고도 포근한 정서를 기반으로 삶에 대한 사랑의 깊은 의미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시의 화자는 의 대조적 이미지를 통해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은 화합, 생명력, 생성의 의미이며, ‘은 갈등과 투쟁, 소멸을 의미하고 있다. 화자는 보다 흐르는 로 만날 것을 소망하여 투쟁하기보다는 화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가정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우르르 우르’, ‘푸시시 푸시시와 같은 음성상징어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모두 4연으로 된 이 시는 1연에서 이 되어 만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2에서는 이 되어 바다에 닿고 싶은 마음을, 3연에서는 로 만나려는 현재의 상황을, 4연에서는 이 지난 뒤에 로 만나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키 큰 나무는 부정적 문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이며, ‘우르르 우르르는 물이 지닌 넘치는 생명력을 청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표현이다.

 

  1연에서 이 되어 만난다면에서 가뭄으로 표상된 현대인의 삶의 고독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그리고 ‘ ~ 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한 것은 조화로운 만남에 대한 화자의 소망인 동시에 부정적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가문의 어느 집과 대립적인 시구로서 메마르고 비정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시인이 바라본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키 큰 나무는 넉넉한 모습의 생명력을 지닌 존재, , 부정적 문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강물을 이루어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고 부끄러운 바다에 닿기를 소망하고 있다. 여기서 죽은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이라는 표현은 척박하고 메마른 현실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는 행위이며,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이라는 표현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원초적인 생명력, 즉 순수한 이상 세계에 닿고 싶은 소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3연을 보면 지금 우리는 이 아닌 로 만나려는 현재의 상황을 노래한다.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의 모습은 로 만나려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로 상징되는 조화로운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한 것들을 깨끗이 태워 버릴 필요가 있기에 로 만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은 파괴와 소멸의 이미지이며, ‘숯이 된 뼈는 불로 인해 파괴된 것, , 생명력을 잃어버린 존재를 상징한다.

 

 그리고, 시인은 4연에서 이 이 지나가고 난 후, 모든 사람들이 만 리(萬里)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마침내 흐르는 물로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화자의 소망과 현실 극복의 의지가 담겨 있다. , 부정적인 것들이 에 다 타버리고 난 뒤, 조화와 합일, 충만한 생명력으로 만나자는 것이다. 여기서 화자가 지향하는 넓고 깨끗한 하늘이란 바로 완전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새로운 만남의 이상적 공간을 상징한다.

 

 이 시는 의 이미지를 통해 갈등이 사라지고, 조화롭고 생명력 가득한 세계가 도래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시는 결국, 이기주의, 무관심, 물질적 가치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문제점과 이러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작자 강은교(姜恩喬, 1945 ~ )

 

 시인. 함남 흥원 출생. 1968사상계신인 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허무를 주제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점차 생명의 신비와 공동체적 삶으로 관심을 넓혀 갔다. 시집으로 허무집(1971), 소리집(1982), 우리가 물이 되어(1987), 초록 거미의 사랑(2006) 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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