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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 / 황지우

by 혜강(惠江) 2020. 4. 8.

 

<시>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

 

 

 

- 황지우

 

 

 

1983420, 맑음, 18

 

토큰 5550, 종이컵 커피 150, 담배 솔 500, 한국일보 130, 짜장면 600, 미스 리와 저녁 식사하고 영화 한 편 8,600, 올림픽 복권 52,500

 

표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

준 청과물상 金正權(46)

 

=얼핏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 趙世衡같이 그릇된

 

셨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생

활 태도를 일찍부터 익혀 평

 

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이다. (李元柱 군에게)

 

임감이 있고 용기가 있으니

공부를 하면 반드시 성공

 

 

  대도둑은 대포로 쏘라

                                    - 안의섭, 두꺼비

 

(11) 10610

일화15만엔(45만원) 575캐럿물방울다이어1(2천만원) 남자용파텍시계(1천만원) 황금목걸이5동쭝1(30만원) 금장로렉스시계1(1백만원) 5캐럿에머럴드반지1(5백만원) 비취나비형브로치2(1천만원) 진주목걸이꼰것1(3백만원) 라이카엠5카메라1(1백만원) 청자도자기3(싯가미상) 현금(250만원)

너무 하여 귀퉁이가 안 보이는 의 왕궁에서 오늘도 송일환 씨는 잘 살고 있다. 생명 하나는 보장되어 있다.

 

 

                - 출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이해와 감상


 

 1983년에 발표된 황지우의 이 시는 1980년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한 시이며, 그 비판을 이미 존재하는 여러 텍스트의 부분들을 골라 붙여서 실험한 실험시이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 시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전체 아홉 개의 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는 시인의 내면이나 감정이 드러난 부분이 없다. 심지어 시인 자신의 고유한 진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마저 없다. 시인은 이미 존재하는 여러 텍스트의 부분들을 잘라서 그것들 사이에 새로운 연관성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부정부패와 거짓이 난무하는 1980년대의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비판한 현실 참여적인 작품이다. 전체 9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연에서는 시적 내용의 시간적 배경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밝히고 있고, 2연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인 송일환 씨의 하루 지출 명세를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가난하고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3~7연에서는 당시의 신문에 소개된 평범한 사람들의 미담을 보여준다,

 

 그리고 3~9연까지는 송일환 씨가 130원을 주고 산 한국일보의 기사처럼 보인다. 문맥이 많이 잘린 상태이기 때문에 기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고액권 수표를 주워 주인을 찾아준 김정권, 부유층의 집만 골라 털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대도(大盜) 조세형, 조세형을 신고해 탈주범 검거에 공을 세운 것으로 이름을 알린 이원주 학생 등의 이야기, 미담(美談)의 한 가운데에 슬쩍 조세형이라는 이름을 섞어놓은 것은 평범하고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이후에 등장할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대비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리고 8연에서 신문의 만평 기사를 인용하여 부유층의 집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훔친 대도(大盜) 조세형을 체포한 경찰을 풍자하고 있다. 19834월 부유층의 집만 골라 털다가 체포된 조세형이 징역 15년에 보호감호 10년이라는 황당한 판결을 받고 수용되었다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단순 절도범에게 사실상 징역 25년을 선고한 것은 그의 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를 풍자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9연은 ‘(11) 10610라는 구절을 보건대 조세형이 부유층의 집을 돌면서 훔친 물품의 리스트인 듯하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어느 정도의 부를 축척하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반어적으로 그들의 부정부패를 비난하고 있다. 이 비난을 위해 시인은 너무 하여 귀퉁이가 안 보이는 재의 왕궁인 생명보험회사에서 오직 생명 하나는 보장으로 생활하고 있는 송일환 씨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그러므로 9연에서 잘 살고 있다.’라는 진술은 반어적으로 읽어야 한다. 즉 이는 목숨을 보전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것도 누리지 못하는 삶과 부조리한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한 진술인 것이다.

 

 황지우가 1980년대에 발표한 시들은 당시의 정치사회 현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는 5공화국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의 폭력성과, 국가권력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급성장한 경제 권력인 재벌이 지배한 정경유착의 시대였다. 이러한 19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당시 많은 사람에게 씻기 어려운 불행을 경험하게 했고, 세상은 점차 부자들과 빈자들로 양분되던 암담하고 참혹한 시절이었다. 황지우의 시는 이런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그런데 부정적 현실에 대한 황지우의 대응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저항시와는 무척 다르다. 그는 부정적 현실을 묘사하고 비판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문학의 형식 자체를 파괴하고, 부정적 현실에 대한 화자의 감정적 개입을 억제하며, 마치 콜라주나 몽타주처럼 현실과 텍스트를 오려 붙여서 이상한 조합을 만든다. 황지우의 이러한 시적 창작법은 기존의 시 형식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해체시, 실험시라고 불리거나,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텍스트들을 파편적이고 풍자적으로 인용한다고 하여 포스트모더니즘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시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역시 시사만화와 신문기사 등을 편집하는 특유의 창작 방식으로 보여주는 실험시에 속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작자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전남 해남 출생.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연혁>이 입선하여 등단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를 주로 썼다.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4), 나는 너다(1987), 소용돌이무늬 속의 연꽃(1990), 게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가 있다. 시작 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다.

 

 특히, 황지우는 1980년대의 민중시와 형태 파괴시라는 두 가지 흐름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때, 그 두 가지 흐름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시인이다. 그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민중시 운동이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던 극단적인 이념 추구 방향뿐 아니라, 순수시의 정서적 안일성까지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하고, 언어의 힘을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해체시의 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체시의 시도는 실험시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는데 황지우, 오규원, 이승훈, 유하 등이 이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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