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尋人)
- 황지우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심인(尋人) : 사람을 찾음. 또는 찾는 사람.
두절 : 교통이나 통신 따위가 막히거나 끊어짐.
영장 : 법원·관청이 강제 처분을 할 수 있도록 발부한 명령서.
이 작품은 신문의 심인란(사람을 찾는 작은 광고)을 인용하여 1980년대 억압적 분위기의 사회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좌절감과 무력감을 풍자적으로 희화화(戲畫化)하고 있다.
이 시는 '심인(尋人)'이라는 제목처럼 사람을 찾는 작은 신문 광고를 인용하여 현실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인식을 드러낸 파격적 형식의 시로서 일상성에서 벗어난 실험적(實驗的)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풍자를 통해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람을 찾는 내용이 3연에 걸쳐 제시된다. 그리고 4연에 이르러 신문 광고를 보고 있는 화자의 상황이 한순간에 드러난다. 화자는 지금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화장지로 쓸 신문지를 심심풀이 삼아 읽는 중이다. 거기에 실린 광고들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신문 광고의 행간에 담긴 시대적 의미가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시에서는 신문 광고를 화자의 상황과 연결시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인란의 광고를 그대로 오려다 시로 활용하는 위의 시는 ‘80년 5월 이후 가출’에 방점을 찍지 않아도 시들이 가리키는 방향 때문에 자연스레 행불자가 많은 시대로 줄달음친다. 상황의 제시와 독자의 유추를 시의 힘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파격적인 형식은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4연에 가서 화자는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라는 표현으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시대적 고통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이 짤막한 시구에는 민중들의 삶이 고난과 시련 속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신문만을 읽고 있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시는 신문에 실린 사람을 찾는 광고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볼일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과 병치시킨 파격적인 형식의 실험시로서 억압적인 분위기의 사회에서 삶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과 좌절감을 풍자적으로 희화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가 쓰여진 1980년대, 1980년 5월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시기로서 이 운동은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가담했다가 사망 혹은 실종되었다.
이를 감안하면 결국, 이 시는 신문 광고에 난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이들로 보여지며,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는 표현에는 진실이 외면된 시대의 폭력 앞에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배설의 장소에서 신문을 읽는 것뿐이라는 자조적 저항성이 시의 배경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시인. 전남 해남 출생.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이 입선하여 등단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를 주로 썼다.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4), 《나는 너다》(1987), 《소용돌이무늬 속의 연꽃》(1990), 《게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가 있다. 시작 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다.
특히, 황지우는 1980년대의 민중시와 형태 파괴시라는 두 가지 흐름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때, 그 두 가지 흐름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시인이다. 그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민중시 운동이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던 극단적인 이념 추구 방향뿐 아니라, 순수시의 정서적 안일성까지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하고, 언어의 힘을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해체시의 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체시의 시도는 ‘실험시’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는데 황지우, 오규원, 이승훈, 유하 등이 이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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