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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무등(無等) / 황지우

by 혜강(惠江) 2020. 4. 7.

 

 

 

 

 

 

 

무등(無等)

 

 

 

황지우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 숨가쁜산치밀어오르는산갈망하는

,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눈뜨는산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5)

 

 

이해와 감상

 

 1985년에 발표된 황지우의 이 시 <무등(無等)>은 광주 무등산의 형태와 성향을 빌어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암울했던 80년대의 정치적 분위기를 선명하게 담고 있는 80년대 최대 문제작인 황지우 시인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에 뒤이어 나온 두 번째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5)에 실려 있다.


  이 시는 시의 본문을 특정한 형상으로 구성하여 주제 의식이나 대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구체시(具體詩)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구상시(具象詩)라고도 하는 구체시는 한 편의 시가 하나의 시각적인 통일체로 지각되어 다양한 효과를 산출하는 형태화한 시 형식을 지칭하는데, 이 시는 시의 본문이 시의 중심 대상인 무등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시는 산의 모습처럼 시행을 삼각형으로 배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시에 속하는 시로서, 산의 형태를 나타내는 독특한 시행 배열을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과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무등산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전개 과정은 하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높은 산꼭대기의 에서 시작하여 산자락으로 하산하는 과정으로 시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하산의 과정이라는 시적 전개 과정과 맞물려 내용상의 변화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산 정상의 내용이 격한 분노와 반항, 저항의 심정적 분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면, 산 아래로 내려올수록 미래에 대한 낙관과 포용의 정서로 변용되고 있다. 산의 형상이라는 시의 형식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용은 무등산을 형용하는 수많은 명사구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13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산 정상의 핵심어인 한자 을 놓아 위로 분출하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로부터 나열되는 무등산을 의미하는 명사구들은 상실과 분노, 침묵과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 산’, ‘침묵의 산’, ‘죽음의 산’, 피의 산, 피투성이의 산 등의 명사구들이 무등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켜놓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 사이에 사랑의 산’, ‘부활의 산이라는 대립적인 이미지의 시구가 있으나 산의 위쪽에 배치된 산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0행의 종교의 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시상은 서서히 미래지향적인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종교의 산용서, 화해, 평화, 평등을 내포하는 이미지로 민중의 역사적인 힘과 희망에 가득찬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며 긍정의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아픔과 상처를 감싸 안는 어머니로서의 산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 무등산은 눈뜨는 산이자 새벽의 산, 희망의 산으로 미래지향적인 산으로 변모하고, ‘우리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 산이자 대지의 산으로서 우리를 감싸주는 어머니라는 포용의 산으로 자리매김 된다. 산의 맨 아래에 도달하여 드디어 무등산은 등급이나 차별이 없는 <무등(無等)>이라는 자신의 본질에 도달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무등산의 형상과 그 정신을 표현함으로써 무등으로 상징되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이란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 뭇 생명을 감싸 안는 포용의 세상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해설 : 남상학)

 

 

작자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 황재우. 전남 해남 출생. 1980중앙일보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문학과 지성에 수필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한 시를 주로 썼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대와 분리될 수 없는 그의 시에는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시적 파괴의 형태로 융화되어 있으며 시인은 시적 화자의 자기부정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4), 나는 너다(1987), 소용돌이무늬 속의 연꽃(1990), 게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가 있다. 시작 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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