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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by 혜강(惠江) 2020. 4. 7.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게눈 속의 연꽃(1990)

 

 

시어 풀이

 

애리는 : 마음이 아픈, 아리는의 방언.   

 

 

이해와 감상

 

 

 누군가를 절실하게 기다리다 보면 주변의 모든 소리가 기다리는 대상이 오는 소리로 들려오기도 한다. 이 시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절실한 기다림의 심정을 평범한 일상어를 통해 잘 형상화한 시로, 특히 기다리는 사람의 심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기다림이라는 것이 일방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너에게로 가는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는 것을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기다림에 대한 화자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절실하고 안타까운 어조로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으며,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재회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시어의 반복과 변형으로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12행에서는 가 오기로 한 곳에서 너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느끼는 화자의 설렘과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미리 가서 초조함과 설렘 속에서 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는 끝내 오지 않고, 매번 인 줄 알았다가 네가 아님을 확인하는 일은 나에게 가슴 애리는고통을 가져다 준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내게로 온다는 표현은 기다림의 절실함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너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확대해 가지만, 결국 문이 닫힌다.‘

 

   13~22행에서 는 마침내 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는 아주 멀리 있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오고 있음에도 아직 에게 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는 것은 와의 만남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기에 를 기다리는 동안 가겠다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에게로 간다는 것은 결국 더욱 초조하고 절실한 기다림의 안타까운 순환 행위일 뿐이다. 왜냐하면 는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단지 에게 상상으로 다가갈 뿐이기 때문이다.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에 대한 기다림으로 인해 설레고 초조한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마지막 행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간다는 것은 반복과 역설적 표현을 통해 만남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기다림을 제재로 한하여 기다림의 절실함과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이 시는  그 자리에서 를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에로 가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기다림을 더욱 절실하고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시에서 화자가 절실하게 기다리는 , ‘사랑하는 이는 누구일까? 그것은 13행에 드러난 대로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작품의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일 수도 있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소중한 것이지만, 현재에는 부재(不在)하는 어떤 것들, 즉 소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를 를 기다리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점에서 비극적이고 절망적이지만,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은 한없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찬 것이기에 의미가 있으며, 절망의 현재로부터 희망의 미래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작자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 황재우. 전남 해남 출생. 1980중앙일보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문학과 지성에 수필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한 시를 주로 썼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대와 분리될 수 없는 그의 시에는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시적 파괴의 형태로 융화되어 있으며 시인은 시적 화자의 자기부정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4), 나는 너다(1987), 소용돌이무늬 속의 연꽃(1990), 게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가 있다. 시작 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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