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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선제리 아낙네들 / 고은

by 혜강(惠江) 2020. 4. 10.

 

 

 

 

 

선제리 아낙네들

 

 

- 고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 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리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 출전 만인보 1(1986)

 

시어 풀이

 

: 새로운 마을 혹은 새로 잡은 터

중뜸 : 마을 한가운데를 뜻하는 말. ‘은 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을 이름.
: 채소나 과일 따위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접은 채소나 과일 백 개.
파장 떨이 : 시장이 끝나기 전에 물건값을 낮추어 판매하는 것.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정겨운 마음씨를 진술한 시로, 민중들의 고달픈 삶과 공동체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선제리 아낙네들이 고달픈 인생살이에도 순박한 마음들을 잃지 않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 땅의 서민들이다. 화자는 이들을 통해서 가난하지만 의좋게 지내는 순박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사용하여 사실성을 느끼게 하고,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적 대상 및 배경을 형상화하였다. 또한, 유사한 음을 반복하는 민요체를 사용하고, 반어법, 의인법 등으로 주제를 그려냈다.

 

 이 시는 먹밤중 한밤중이라는 깊은 밤을 시간적 배경으로 선제리 아낙네들의 귀갓길을 제시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개들이 짖어 대는 칠흑 같은 어두운 먹밤중에 먼 곳으로부터 선제리 아낙네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떠들썩한 시골 마을의 밤 풍경이다.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는 것은 고단함과 배고픔을 이기며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정겨운 대화 소리가 들린다는 것으로,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은 어슴푸레 들리는 말소리의 종결어미만으로 대화 장면을 드러낸 것이다.

 

 아낙네들의 말소리는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기러기 울음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아낙네들은 남 같지 않은, 가족같이 정겨운 이웃들이다. 두 번 반복 되는 남이 아니다중 앞의 것은 선제리 아낙네들의 처지가 기러기와 같은 처지임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끼리끼리 의좋게 정을 나누며 사는 이웃과 남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사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다가야하는 고단한 길, 그것도 허기로 인해 더욱 힘들고 고달픈 삶이지만,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함께 하는 마음으로 가난과 고난을 이겨 내는 사람들이다. 화자는 얼마나 의좋은 한 세상이더냐라며 그들의 공동체적 삶의 자세를 긍정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라며 깊어 가는 밤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평이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시각, 청각 등의 감각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고단한 현실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작자 고은(高銀, 1933 ~ )

 

 시인.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승려 생활 법명은 일초(一超).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역임. 1958현대시<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조국의 별(1984), 만인보(1989)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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