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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눈길 / 고은

by 혜강(惠江) 2020. 4. 10.

 

 

 

 

 

눈길

 

 

-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들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출처 현대문학(1958)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눈 덮인 길'을 통해, 방황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던 시적 화자가 눈 덮인 길을 바라보며 내면 의식이 무념무상(無念無想)과 평화로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화자가 '눈길'을 바라보며 시작된다. 이때 ''은 화자가 걸어 온 길을 모두 덮어 버린다. 이러한 인식은 곧 화자가 살아온 번민과 고통, 방황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평화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에서 겨울은 시련의 삶을, ‘낯선 지역은 갈등과 번뇌에서 벗어나 이전과 다르게 인식한 세상이다그리고 화자는 처음 경험해 보는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대해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된다. 여기서 눈 내리는 풍경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편, ’바라보노라로 시작하는 10행부터는 이러한 정신적 경지를 바탕으로 내면의 평화로 인해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대지의 고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고요와 평화의 경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내면의 평화로 인해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마음의 눈으로 느끼게 된 것이며, ’대지의 고백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인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화자가 도달한 평화로움과 무념무상의 상태를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눈길은 갈등이 사라진 세계이며, ’안에서는 어둠'에서 어둠은 흔히 암시하는 절망의 세계가 아니라, 정반대로 지나온 삶 속에서 경험해 온 삶의 애증과 욕망, 슬픔, 고통 등이 모두 사라진 무념무상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위대한 적막은 어떤 갈등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황, 즉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며,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는 깜깜한 상황이 아닌, 무념무상의 경지를 의미한다.

 

 이 시는 ‘~노라라는 영탄적 어미를 6번 반복 사용하여 정신적 깨달음을 드러내고, 시적 대상을 통해 촉발된 주관적 관념의 세계를 형상화함은 물론 상징적 의미를 지닌 시어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내면 의식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과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어둠'이라는 시어를 ''에 의해 지난날의 방황과 고민이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한 무념무상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독특한 개인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자 고은(高銀, 1933 ~ )

 

  시인.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승려 생활 법명은 일초(一超).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역임. 1958현대시<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을 노래하였다. 현대문학(1958)에 수록된 이 시 눈길은 그러한 허무주의 의식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출간된 작품으로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시집으로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조국의 별(1984), 만인보(1989)등이 있다.

 

 

 

 

/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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