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황인숙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어들고 싶어지는.
-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1988)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비가 오는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시로, 비 오는 날의 정취를 인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감각적인 언어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의도적인 쉼표의 사용, 빗물을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찰박’과 그 빗물을 밟는 순수한 대상을 상징하는 시어인 ‘맨발’의 반복은 이 시에 리듬감을 더해 준다.
‘찰박’과 ‘맨발’이란 두 개의 시어로 비가 내리는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시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가볍고 발랄한 언어들로 세계를 자유롭 게 유영하는 억압 없는 영혼을 그려낸다고 평가받는다. 이 시에서 ‘맨발’은 빗물을 의인화한 대상이면서 비 오는 날 빗물을 밟으며 비와 어울리고 싶어하는 순수한 화자의 마음을 상징한다.
‘찰박’거리며 내리는 비는 쉬지 않고 경쾌하게 내린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은 계속 차라박거리며 내리는 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티눈 하나 없는’ 맑고 순수하게 보인다. 빗물을 밟으며 지나는 무수한 맨발들, 그 꾸밈없이 순수한 모습을 본 화자는 마침내 ‘맨발로 기어들고 싶게 하는’에서 보듯이, 자신도 가식 없이 순수한 모습으로 맨발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시는 비 오는 날의 정경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가볍고 발랄한 언어들로 억압 없는 천진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가볍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현대인의 외로움을 발랄하게 표현하는 그는 1990년대로 넘어와서는 삶의 무거움과 고통을 노래하는 시들을 많이 내놓는다. 첫 시집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1988)이후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0),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1994),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 등의 시집을 펴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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