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선유도에 있는 풍장>
풍장(風葬)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출전 《풍장》(1964)
◎시구 풀이
풍장(風葬) : 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
무연히 : 아득하게 너른 상태로.
해탈(解脫) :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여기서는 ‘얽매임에서 벗어남’의 뜻
▲이해와 감상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인 <풍장>은 죽음에 대한 명상이 담긴 시로서 <풍장> 연작시는 세속의 옷을 벗고 한없이 자유롭고 가벼워지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다.
<풍장 1>은 그러한 가벼움에로의 지향을 여는 서막과 같은 시이다. 즉, 풍장이라는 장례 형식을 소재로, 시인이 소망하는 삶의 방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세속을 떠난 시의 화자는 육지를 벗어나고 의복도 벗고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남으로써 편안함을 얻는다.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편안과 가벼움을 제공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유서(遺書)의 형식으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이 시는 첫 행에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라는 표현으로 풍장(風葬)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여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풍장’은 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인데, 굳이 풍장을 원하는 것은 심각함이나 비장함이 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의 의례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죽음의 의례를 마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한 가벼운 마음가짐과 친근한 어조로 자신이 죽은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치러야 할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살아 있을 때와 별 다름없는 복장을 하고 현대문명이 제공하는 교통편을 이용하여 죽음의 장정에 오른다. 죽음이란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검색'으로 암시된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은 풍장이란 제의적 죽음이 함유하고 있는 불온성, 즉 현실 순응형의 삶으로부터의 일탈, 금지의 위반을 암시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연작시 <풍장>의 서두를 장식하는 죽음의 항해가 서쪽, 다시 말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사자의 왕국은 대개 해가 저무는 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뭍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선유도로 수평적 이동을 한 끝에 그는 드디어 목적지인 ‘무인도’에 도착한다. 일상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그 섬은 이 세계의 끝이자 다른 세계(피안)의 입구로서 그곳에서 풍장이란 육신의 해체 의식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그 섬은 사자의 안식처가 연상시키는 격리 고독의 의미를 넘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천상과 지상의 연결점이란 내포를 지니고 있다. 또한, 바닷물과 모태의 양수와의 유비 관계는 섬을 일종의 우주적 자궁, 죽음과 재생이란 통과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보게 만든다. 섬은 모태이자 무덤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같은 구절은 태아 상태로의 회귀를 암시하고 있으며 화자의 시신을 실어 나르는 통통배 역시 태아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요나적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배는 운송 수단인 배인 동시에 새 생명을 잉태한 여성의 배이기도 한 것이다. '통통'이란 신명난 의성어에는 태아 시절 자궁에서 듣던 생명의 박동 소리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그는 섬에 도착한 다음 가방과 옷, 구두와 양말, 손목시계 등 삶의 흔적을 차례로 제거당함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날 당시의 원초적 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여기서 옷과 신발을 벗는 것은 일종의 정화의식- 허물 벗기의 일종으로서 이를 통해 화자는 시원의 순수 상태로 귀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의 형태는 삶의 종료라는 둔중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시인은 죽음에 대한 시적 체험을 통해 삶의 무게를 덜고 삶과 죽음이 적대적 요소가 아님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가 이러한 풍장을 염원하는 것에서 현실에 대한 시인의 허무주의적 태도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바람’이 지니는 소멸(消滅)의 이미지를 통해서 제시된다. 여기에서 바람은 살과 피를 말리듯 일체의 사물을 소멸시켜 자연의 일부로 되돌리는 생명 순환(生命循環)의 원리를 상징한다. 결국, 이러한 죽음마저 그 어떤 세속적 가식이나 신성한 의미도 거부한 채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함께 논다는 것에서 허무에 바탕을 둔 시인의 현실 인식과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을 엿볼 수 있다.
▲작자 황동규(黃東奎, 1938 ~ )
시인. 평남 숙천 출생. 《현대문학》에 <시월>, <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시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고통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시적 주제로 삼아 현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섬세한 서정을 이미지즘적인 기법을 빌려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으나 《풍장(風葬)》을 간행한 후기에 와서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감싸 안으며 죽음의 허무를 초극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 삶의 무게를 덜고, 나아가 죽음조차 길들이겠다는 의미의 자유분방한 표현을 담고 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삼남에 내리는 눈》(1968),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풍장》(1983)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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