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by 혜강(惠江) 2020. 4. 5.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시어 풀이

 

동여맨 : 끈이나 새끼, 실 따위로 두르거나 감거나 하여 묶은.
성긴 : 물건의 사이가 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당신으로부터 과거의 추억을 단절하는 이별의 편지를 받은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면, 누구나 눈앞이 캄캄해지고 의욕이 다 사라질 것이다. 사랑이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화자는 과거의 사랑이 단절로 인해 방황하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시의 제목이 조그만 사랑 노래인가? 그 이유를 생각하면 이 시의 내용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이별을 통보받은 상황이지만 사랑의 감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이 용납되기에는 현실적 상황이 매우 암담하다. 이처럼 현실 상황이 암담하고, 다시 이루어질 희망도 거의 없기에 화자의 사랑은 조그만것일 수밖에 없다.

 

 이 시는 화자의 정신세계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참신하고 비일상적인 언어 표현과 상실과 소멸의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주제를 표현내고 있다.

 

 이 시에서 어제를 동여맨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두 사람의 행복했던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는 편지일 것임이 분명하다. ‘어제의 사라짐은 어린 날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라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이 어린 날의 어떤 특정한 추억과 관련된다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돌의 상태는 분명 그 추억이 더 이상 행복하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깨어진 금들은 바로 이러한 깨어진 추억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으로, 추억의 빈자리엔 이제 성긴 몇 송이 눈만 날릴 뿐이다.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눈은 화자가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외쳐 보아도 그 사랑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1행의 어제를 동여맨 편지는 행복했던 과거와의 단절을 시각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더 이상 과거로 갈 수 있는 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사라진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은 과거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돌들마저도 화자를 외면한 채 추억을 더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대를 사랑하는 감정이 여전하여 이별의 아픔으로 인한 슬픔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사랑이 단절된 상황에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간절한 희망의 표현이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로 비유된 고통스럽고 암담한 상황에서 실연의 상처인 깨어진 금에 가슴 아파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은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화자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눈 뜨고 한없이 떠다니는 처럼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 마지막 행의 몇 송이 눈은 화자의 내면이 투영된 객관적 상관물로서 이별의 상황에서 방황하는 화자를 의미한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한 노래라는 해석 외에, 1970년대 암울했던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다룬 노래로도 이해할 수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속의 화자는 과거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거 함께 놀던 돌들마저도 얼굴을 가리고 박혀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현실은 추위가 가득한 저녁 하늘이며, 화자는 예민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하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떨며 이 세상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과 같은 처지로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사랑의 상실로 인한 슬픔과 방황 외에도 사랑 노래의 내용을 빌려 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는 암울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이중적 구조의 작품인 것이다.

 

 

작자 황동규(黃東奎, 1938 ~ )

 

 

 시인. 평남 숙천 출생. 현대문학<시월>, <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시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고통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시적 주제로 삼아 현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섬세한 서정을 이미지즘적인 기법을 빌려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으나 풍장(風葬)을 간행한 후기에 와서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감싸 안으며 죽음의 허무를 초극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 삶의 무게를 덜고, 나아가 죽음조차 길들이겠다는 의미의 자유분방한 표현을 담고 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삼남에 내리는 눈(1968),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풍장(1983)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장(風葬) / 황동규  (0) 2020.04.06
기항지 1 / 황동규  (0) 2020.04.06
즐거운 편지 / 황동규  (0) 2020.04.04
그대의 별이 되어 / 허영자  (0) 2020.04.04
자수(刺繡) / 허영자  (0) 2020.04.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