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즐거운 편지 / 황동규

by 혜강(惠江) 2020. 4. 4.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빠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출전 현대문학(1958)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58현대문학11월호에 추천된 황동규의 작품으로, ‘그대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변함없는 사랑을 반어적(反語的) 어법을 통해 강조하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기다림을 통해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 때 연상의 여성을 사모하는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연애시로서 지금도 널리 애송되는 작품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반어적 표현을 통한 정서 전달과 자연현상에 빗대어 사랑을 나타낸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산문시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통사구조의 반복과 완결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전 2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사랑과 기다림을 주된 제재로 삼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다림을 통해 극복해나가겠다는 사랑의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한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때 묻지 않은 시각과 감성이 풍부한 서정적인 어조로 형상화히였다.

 

 제1연에서는 반어적 표현법을 사용해 그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간절한 자신의 사랑을 사소한 일이라고 함으로써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이라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자신의 사랑은 그대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변화무쌍하고 일시적이며, 때론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그치는 눈처럼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늘 변함없이 그대의 곁을 지키고겠다는 확실한 마음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는 2연에 와서, 자신의 사랑을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사랑, 기다림의 자세로 승화하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라는 반복적 표현을 통해 상대를 향한 시적 화자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어 자신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다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다림의 도중에 골짜기로 상징되는 외롭고 견디기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해도 자신의 사랑이 끝난다고 해도, 그대를 사랑하는 그 기다림의 자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이 이어진다. , 기다림이란 변함없음, 즉 영속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 ‘’, ‘낙엽과 같은 계절의 변화처럼 다소 변할 수는 있으나, 결국은 자연의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사랑과 기다림도 영원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기다림은 시 속에서 화자의 사랑의 애절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좀 더 성숙하고 깊이 있는 사랑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일반적인 연시에서 보이는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전통적 정서를 뛰어넘어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 기다림의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전형화되어 온 전통적 연애시의 계보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작자 황동규(黃東奎, 1938 ~ )

 

 

 시인. 평남 숙천 출생. 현대문학<시월>, <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시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고통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시적 주제로 삼아 현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섬세한 서정을 이미지즘적인 기법을 빌려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으나 풍장(風葬)을 간행한 후기에 와사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감싸 안으며 죽음의 허무를 초극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써 삶의 무게를 덜고, 나아가 죽음조차 길들이겠다는 의미의 자유분방한 표현을 담고 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삼남에 내리는 눈(1968),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풍장(1983)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항지 1 / 황동규  (0) 2020.04.06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0) 2020.04.05
그대의 별이 되어 / 허영자  (0) 2020.04.04
자수(刺繡) / 허영자  (0) 2020.04.04
귀천(歸天) / 천상병  (0) 2020.04.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