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이 적막하다
- 정현종
가을 햇볕에 공기에
익는 벼에
눈부신 것 천지인데,
그런데,
아, 들판이 적막하다 ―
메뚜기가 없다!
오 이 불길한 고요 ―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졌느니…….
- 출전 《한 꽃송이》(199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심각한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시로, 들판에 메뚜기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진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화자는 풍요로운 가을 들판의 모습과 메뚜기가 없는 들판의 모습을 대비하여 시적 상황을 강조하고, 쉽고 간결한 언어, 느낌표, 말줄임표 등을 통해 인간의 욕망으로 자연의 생태계가 파괴된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풍요로운 가을 들판을 걸어가고 있다. 따스한 가을 햇볕과 상쾌한 가을 공기 속에서 들녘에 익어 가는 벼를 보며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화자는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이때 화자가 발견한 것은 들판이 지나치게 적막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요함은 화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고, 화자는 그 이유가 ‘메뚜기’의 부재 때문임을 알게 된다.
화자는 이 고요함을 불길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메뚜기’의 부재는 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 고리의 일부인 메뚜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 연결 고리가 끊어져 생태계의 순환 질서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에는 ‘메뚜기’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메뚜기’가 사라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인간은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농약의 독성이 ‘메뚜기’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 즉, 이 시는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의 과도한 욕심을 간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들판이 적막하다’는 것은 앞서의 ‘눈부신 것 천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메뚜기가 없다!’는 쉽고 간결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영탄법의 사용과 함께 들판의 적막함을 강조해 준다.
2연에서 화자는 ‘메뚜기’가 없어 고요함에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곡식이 익어 가는 가을 들판에 꼭 있어야 할 ‘메두기가 없다’는 것은 곧 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 고리의 일부인 메뚜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생명의 황금 고리’인 생태계의 순환 질서의 파괴, 즉, 먹이 사슬이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메뚜기’의 부재(不在)는 생태계가 파괴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화자는 ‘불길한 고요’라는 표현으로 생태계가 파괴된 것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는데, ‘메뚜기’의 부재(不在)는 단순히 '메뚜기'의 부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명의 황금 고리'가 존재의 사슬에 대한 비유라면, 존재의 사슬이 끊어짐은 곧 전체 생태계의 구성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짤막한 시는 환경 파괴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환경시’인 동시에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명에 대한 문명비판시인 것이다.
시인. 서울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박두진이 <독무>, 〈여름과 겨울의 노래〉 등을 추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는 사물에 깃들어 있는 꿈과 인간의 근원적인 꿈의 관계를 탐구한 시를 발표하였고, 후기에는 구체적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시집으로 《사물의 꿈》(1972),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82),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1991), 《한 꽃송이》(1992), 《내 어깨 위의 호랑이》(1995), 《이슬》(1996), 《갈증이며 샘물인》(1999), 《견딜 수 없네》(2003), 《광휘의 속삭임》(200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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