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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흙냄새 / 정현종

by 혜강(惠江) 2020. 4. 3.

 

 

 

 

흙냄새

 

 

- 정현종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 가서 닿는가. 머나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 4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이해와 감상

 

 

 기계화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는 매일 흙 대신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걷는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외롭고 메마르게 느껴진다. 1989년에 발표된 정현종의 이 시는 흙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생명의 원천과 그 에 대한 경외감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총 3연으로 된 자유시인데, “흙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부각하고, 그것을 생명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1연과 3연은 매우 짧은 2행으로 된 연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2연은 2행이 산문처럼 길어져 산문시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1연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드는 전체적인 인상을 짧게 언급한 뒤, 2연에서 흙냄새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상념을 감격적으로 나열하게 되고, 다시 3연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응축해서 표현함으로써 마무리하는 시상의 전개와 맞물려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1연에서는 시적 자아는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라고 조금 돌발적인 발언을 한다. 이러한 언급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여 자연스럽게 시적 전개 과정으로 몰입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동시에 흙냄새에서 공감과 연대의 어떤 것을 발견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연에서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흙냄새에서 시적 자아가 발견한 세계가 산문적인 도도한 운율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2연의 1행에서 시적 자아는 흙냄새를 깊은 향기라고 명명하면서 그 향기가 어디에서 연원하는지를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이 도달한 곳은 원시(原始)의 시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원초적인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 흙냄새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생명들에게 토대를 제공하여 존재토록 한 원천이며, 근원적인 차원에서 흙냄새는 생명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존재토록 하는 근원적인 힘으로서 깊은 숨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흙냄새는 생명의 근본적 토대이자 기원에 해당되는 크나큰 품이나 다름없다.

 

  또 화자는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라며 흙냄새가 지니고 있는 총체적인 의미를 직접적으로 정의한다. 화자는 이러한 추상적인 생각을 구상화하여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흙냄새라는 본질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명 현상이 발현되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3연에서는 2연의 생각을 종합해서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라고 은유적으로 응축하고 있다. ‘한통속이란 서로 마음이 통하여 같이 모인 동아리를 지칭하는데, 흙냄새가 생명의 동아리로서 뭇 생명체들의 공감과 이해를 대변해주고 있는 실체라는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는 기계화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흙냄새라는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서 생명의 근원과 신비, 그리고 생명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작자 정현종(鄭玄宗, 1939 ~ ) 

 

 

 시인. 서울 출생. 1965현대문학에 박두진이 <독무>, 여름과 겨울의 노래등을 추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는 사물에 깃들어 있는 꿈과 인간의 근원적인 꿈의 관계를 탐구한 시를 발표하였고, 후기에는 구체적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시집으로 사물의 꿈(1972), 나는 별 아저씨(1978),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82),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1991), 한 꽃송이(1992), 내 어깨 위의 호랑이(1995), 이슬(1996), 갈증이며 샘물인(1999), 견딜 수 없네(2003), 광휘의 속삭임(200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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